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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1. 세다 2. 셈하다, 계산하다(計算--) 3. 헤아리다 4. 꾀하다 5. 수학 6. 산수 7. 셈"</ref> '헤아린다'라는 뜻의 한자어 '''계'''(計)는 전통적인 용어인 '''계탁'''(計度) 또는 '''계탁분별'''(計度分別)의 줄임말이다. [[계탁분별]]을 줄여서 그냥 '''분별'''(分別)이라고도 한다. 계{{.cw}}계탁{{.cw}}계탁분별{{.cw}}분별을 순한글로는 일반적으로 '''헤아림'''이라고 한다.
 
계{{.cw}}계탁{{.cw}}계탁분별{{.cw}}분별{{.cw}}헤아림은 특히 [[제6의식]]의 작용을 말하는 것으로, 사물에 대해 생각[量]하고 사유(思惟: 특히 심사숙고)하고 구별[分別]하고 [[추론]]하고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sfn|곽철환|2003|loc="[http://terms.naver.com/entry.nhn?cid=2886&docId=896979&categoryId=2886 계탁분별(計度分別)]". 2013년 3월 2일에 확인|quoteps=<br>"계탁분별(計度分別):
삼분별(三分別)의 하나. 대상을 구별하여 사유하고 판단함."}}{{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A%B3%84%ED%83%81&rowno=2 計度分別(계탁분별)]". 2013년 3월 2일에 확인|quoteps=<br>"計度分別(계탁분별):
또는 추탁분별(推度分別)ㆍ분별사유(分別思惟). 3분별의 하나. 널리 과거ㆍ현재ㆍ미래의 3세에 걸쳐 현전(現前)에 보는 사실을 여러 가지로 생각하고 분별하는 것."}}{{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14079&DTITLE=%ADp%AB%D7%A4%C0%A7O 計度分別]". 2013년 3월 2일에 확인|quoteps=<br>"計度分別: 梵語 abhinirūpanā-vikalpa。意即分別計量推度。三分別之一。又作推度分別、分別思惟。謂於所緣之境計量推度,係與意識相應的散慧之分別作用。阿毘達磨俱舍論卷二(大二九‧八中):「散,謂非定。意識相應散慧,名為計度分別。」〔大毘婆沙論卷四十二、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二〕(參閱「三分別」531)p3954 "}} (이하 '계{{.cw}}계탁{{.cw}}계탁분별{{.cw}}분별{{.cw}}헤아림'을 가리키는 낱말로서 '계탁분별'을 사용한다.)
 
《[[아비달마구사론]]》 제2권에 따르면 [[계탁분별]]의 [[본질적 성질]] 즉 [[본질 (불교)|본질]]은 [[제6의식]]과 [[상응]]하는 '''산혜'''(散慧) 즉 '''산란된 지혜'''이다. 그리고 산란된 [[지혜 (불교)|지혜]][慧]는 [[정 (마음작용)|선정]][定]에 의해 나타나는 '바른 {{nowrap|지혜'}} 또는 [[정 (마음작용)|선정]]에 든 상태일 때 나타나는 '바른 지혜'가 아닌 다른 형태의 [[지혜 (불교)|지혜]]를 말한다.{{sfn|세친 조, 현장 한역|T.1558|loc=제1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29n1558_p0008a27 T29n1558_p0008a27 - T29n1558_p0008b08]. 계탁분별(計度分別)|quoteps=<br>"若五識身有尋有伺。如何得說無分別耶。頌曰。
<br>  說五無分別  由計度隨念
<br>  以意地散慧  意諸念為體
<br>論曰。傳說。分別略有三種。一自性分別。二計度分別。三隨念分別。由五識身雖有自性而無餘二。說無分別。如一足馬名為無足。自性分別體唯是尋。後心所中自當辯釋。餘二分別如其次第。意地散慧諸念為體。散謂非定。意識相應散慧。名為計度分別。若定若散意識相應諸念。名為隨念分別。"}}{{sfn|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K.955, T.1558|loc=제1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214&startNum=27 27 / 1397]. 계탁분별(計度分別)|quoteps=<br>"만약 5식신이 유심유사라고 한다면 어떻게 그것을 무분별(無分別)이라고 설할 수 있는 것인가?<sup style="color: blue">27)</sup>
<br>게송으로 말하겠다.
<br>  다섯 가지 식을 무분별이라고 설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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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탁분별의 정의인 '생각하고 사유하고 구별하고 [[추론]]하고 [[판단]]하는 것' 그 자체에는 본래 부정적인 의미가 없지만, [[정 (마음작용)|선정]][定]에 의해 나타나는 바른 [[지혜 (불교)|지혜]], 즉 [[무루혜]]가 아니라는 점에서 불교 일반에서는 [[계탁분별]]이라는 용어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변계'''(遍計)라는 낱말의 문맥에서의 [[계탁분별]], 즉 계(計){{.cw}}계탁{{.cw}}분별{{.cw}}헤아림은 항상 부정적인 의미인 '''그릇된 헤아림'''의 뜻으로 사용된다.
 
즉, 변계(遍計)라는 낱말의 문맥에서의 [[계탁분별]]은 [[미혹]]한 상태의 [[제6의식]], 즉 깨닫지 못한 상태의 [[제6의식]], 즉 아직 [[전의]](轉依: 識이 智로 바뀌는 질적 변형)를 획득하지 못한 [[제6의식]]을 토대로 [[무상]]한 존재인 [[사람 (불교)|사람]][人: 즉 5온의 가화합]과 [[법 (불교)|법]](法)에 대해 [[실아]](實我)가 존재하고 [[실법]](實法)이 존재한다라고 두루[遍] 헤아리는 것, 즉 자신과 주위의 모든 사물에 대해 보편적으로 언제나 그렇게 생각하고 믿으며 또한 이러한 생각과 믿음을 바탕으로 대상을 구별하고 [[추론]]하고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9%81%8D%E8%A8%88&rowno=1 能遍計(능변계)]". 2013년 3월 2일에 확인|quoteps=<br>"能遍計(능변계):
↔소변계(所遍計). 모든 법에 대하여 두루 계탁(計度)한다는 뜻. 계탁이란 자기의 미정(迷情)을 토대로 생멸 변화가 무상한 사람과 법에 대하여, 실아(實我)가 있고 실법(實法)이 있다는 허망한 생각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계탁하는 것은 마음이거니와, 마음 가운데서도 두루 계탁하는 것은 제6식이다. 제7식도 허망하게 계탁은 하지만 두루하지는 않는다."}}{{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19705&DTITLE=%B9M%ADp%A9%D2%B0%F5%A9%CA 遍計所執性]". 2013년 3월 2일에 확인|quoteps=<br>"遍計所執性:
 梵語 parikalpita-svabhāva。乃唯識宗所立三性之一。又稱遍計所執相、分別性、分別相、妄計自性、妄分別性。略稱遍計所執、計所執、所執性。凡夫於妄情上,遍計依他起性之法,乃產生「實有我、實有法」之妄執性。由此一妄執性所現之相,僅能存於妄情中,而不存於實理之中,故稱「情有理無」之法、「體性都無」之法。此種分別計度之妄執性乃周遍於一切境者,故以「遍計」稱之。〔解深密經卷二、瑜伽師地論卷七十四、成唯識論卷八〕(參閱「三性」563) p5617"}} 달리 말하면, [[제6의식]]이 자신의 [[인식대상]]인 [[일체만법]]에 대해 보편적으로 언제나 [[아집]](我執)과 [[법집]](法執)의 [[2가지 집착]][二執]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15900&DTITLE=%AF%E0%B9M%ADp 能遍計]". 2013년 3월 2일에 확인|quoteps=<br>"能遍計:
 「所遍計」之對稱。第六識、第七識普遍計度諸法而妄執有實我、實法,故稱能遍計。唯識三性中,遍計所執性之自性係由能遍計與所遍計所共形成。據攝大乘論本卷中之說,意識即是能遍計,此因意識能自行以名言薰習為種子,復於無邊之行相生起分別作用,故對一切萬法亦產生普遍的分別計度之作用。於諸識之中,安慧謂舉凡有漏之八識均為能遍計;護法則主張前五識與第八識無所執著,僅有第六、第七二識方屬能遍計。〔瑜伽師地論卷七十四、成唯識論卷八、成唯識論述記卷一本〕(參閱「末那識」1941、「意識」5449) p4298"}}{{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9%81%8D%E8%A8%88&rowno=5 六七能遍計(육칠능변계)]". 2013년 3월 2일에 확인|quoteps=<br>"六七能遍計(육칠능변계):
↔ 오팔무집(五八無執). 유식종에서는 8식 중 경계에 대하여 허망 분별을 일으켜 아(我)다, 법(法)이다라고 집착하는 능변계(能遍計)의 뜻이 있는 것은 제6식과 제7식뿐이라고 하는 말. 제7식은 제8식의 견분(見分)을 반연하여 아집(我執)을 일으키고, 제6식은 온갖 법경(法境)에 대하여 아집ㆍ법집을 일으킴. 그러나 전5식과 제8식은 아집ㆍ법집이 없고 능변계하는 뜻도 없다 함. 이는 호법(護法)의 학설."}} 이런 뜻에서 계(計){{.cw}}계탁{{.cw}}계탁분별{{.cw}}분별{{.cw}}헤아림을 보통 불교 일반에서는 '''허망한 분별''' 또는 '''그릇된 분별'''이라고 한다.{{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9%81%8D%E8%A8%88&rowno=5 六七能遍計(육칠능변계)]". 2013년 3월 2일에 확인}}{{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B%B3%80%EA%B3%84%EC%86%8C%EA%B8%B0%EC%83%89&rowno=1 遍計所起色(변계소기색)]". 2013년 3월 2일에 확인|quoteps=<br>"遍計所起色(변계소기색):
법처소생색(法處所生色)의 하나. 제6의식의 허망한 분별에 의하여 변현한 색. 곧 거북의 털, 토끼의 뿔, 허공의 꽃 등과 같이 변괴로 생긴 것들로 주관에 그려지는 바 실체가 없는 그림자."}}{{sfn|곽철환|2003|loc="[http://terms.naver.com/entry.nhn?cid=2886&docId=899578&categoryId=2886 변계소기색(遍計所起色)]". 2013년 3월 2일에 확인|quoteps=<br>"변계소기색(遍計所起色):
그릇된 분별에 의해 일어나는 환영(幻影)."}}{{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19706&DTITLE=%B9M%ADp%A9%D2%B0_%A6%E2 遍計所起色]". 2013년 3월 2일에 확인|quoteps=<br>"遍計所起色:
 為唯識宗所說「法處所攝色」五種之一。指依第六意識之妄分別所變現之影像,如空華水月等無實體之諸色相。(參閱「法處所攝色」3389) p5617 "}}
 
한편, [[유식유가행파]]의 교학에 따르면, [[제7말나식]]도 [[계탁]]을 하지만, 두루 즉 '주위의 일체의 모든 것'에 대해 보편적으로 항상 [[계탁]]하지는 않는다.{{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9%81%8D%E8%A8%88&rowno=1 能遍計(능변계)]". 2013년 3월 2일에 확인}} 대신, [[제7말나식]]은 '[[아뢰야식]]의 [[견분]](見分)'을 자신의 [[실아]]라고 여기는 [[근본 무명]]을 비롯한 [[4번뇌]]를 항상 일으킨다.{{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T.1585|loc=제4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585_p0022a24 T31n1585_p0022a24 - T31n1585_p0022b06]. 4근본번뇌(四根本煩惱)|quoteps=<br>"此意相應有幾心所。且與'''四種煩惱'''常俱。此中俱言顯相應義。謂從無始至未轉依此意任運恒緣藏識與'''四根本煩惱'''相應。其四者何。謂我癡我見并我慢我愛。是名四種。我癡者謂無明。愚於我相迷無我理故名我癡。我見者謂我執。於非我法妄計為我。故名我見。我慢者謂倨傲。恃所執我令心高舉。故名我慢。我愛者謂我貪。於所執我深生耽著。故名我愛。并表慢愛有見慢俱。遮餘部執無相應義。此四常起擾濁內心令外轉識恒成雜染。有情由此生死輪迴不能出離。故名煩惱。"}}{{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loc=제4권. p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897&startNum=216 216-217 / 583]. 4근본번뇌(四根本煩惱)|quoteps=<br>"이 말나식과 상응하는 심소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sup style="color: blue">202)</sup> 우선 '''네 가지 번뇌'''와 항상 함께한다. 여기서 ‘함께한다’는 말은 상응의 의미를 나타낸다. 아득한 옛적부터 아직 전의를 이루지 못한 지위에 이르기까지, 이 말나식은 자연적으로 항상 장식을 반연하고, '''네 가지 근본번뇌'''와 상응한다.
그 네 가지란 무엇인가? ‘아치(我痴)와 아견(我見) 및 아울러 아만(我慢)과 아애(我愛)’를 말한다. 이것을 네 가지 근본번뇌라고 이름한다. ‘아치(我痴)’는 무명을 말한다. 자아의 양상에 어리석어서 무아의 이치에 미혹한다. 따라서 아치라고 이름한다.<sup style="color: blue">203)</sup> ‘아견’은 아집을 말한다. 자아가 아닌 법에 대해서 망령되게 계탁하여 자아로 삼는다. 따라서 아견이라고 이름한다.<sup style="color: blue">204)</sup> ‘아만’은 거만함을 말한다. 집착된 자아를 믿어서 심왕으로 하여금 높이 올린다. 따라서 아만이라고 이름한다.<sup style="color: blue">205)</sup> ‘아애’는 아탐(我貪)을 말한다. 집착된
자아에 대해서 깊이 탐착(耽着)을 일으킨다. 따라서 아애라고 이름한다.<sup style="color: blue">206)</s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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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div style="font-size: 10pt"><references/></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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