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낭 포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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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이 터진 1914년 8월, 프랑스군은 독일로 진공했다가 패하고 후퇴했다([[로렌 전투]]). 이때 포슈의 제20군단은 반격하는 독일군은 [[낭시]]에 묶어두면서 독일군의 대전략 자체를 처음부터 뒤틀리게 만들었다. 파리 방어를 위해 서쪽으로 불려간 포슈는 [[제1차 마른 전투]]에서 [[프랑스 제9군]]을 지휘, 승리하여 일약 영웅으로 떠오른다. 그 뒤 재차 승진하여 북부군집단을 지휘, 영국군과 협조하여 [[제1차 이프르 전투]]와 [[솜 전투]]를 치렀다. 1916년 말, 공세의 실패 또는 정치적 견제에 의해 포슈는 사령관에서 경질되었다.<ref name="Greenhalgh, 2011">Greenhalgh, 2011</ref>
 
1917년 참모총장으로 복귀한 포슈는 1918년 봄 "연합군 [[총사령관]]([[대원수]])"로 임명된다. 포슈는 [[제2차 마른 전투]]를 통해 독일군의 [[춘계 공세]]를 막아내 파리를 지켰으며, 이 공으로 [[프랑스 원수]]의 자리에 오른다. 1918년의 1차대전 서유럽 육상전에서의 연합군의 승리는 사실상 포슈 혼자서 이루어낸 성과이다.<ref name="Larry H. Addington 1994 167–68">{{cite book|author=Larry H. Addington|title=The Patterns of War Since the Eighteenth Century|url=https://books.google.com/books?id=4Nkz3yfLYt0C&pg=PA167|year=1994|publisher=Indiana UP|pages=167–68|꺾쇠표없음이탤릭체=예}}</ref>
 
1918년 11월 11일, 포슈는 독일의 휴전 제안을 받아들였다. 포슈는 독일이 프랑스를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만들려고 휴전협정에 개입했다. [[베르사유 조약]]이 1919년 6월 28일 조인되자 포슈는 프랑스가 라인란트를 합병할 수 없다는 결과에 분노하여 “이것은 평화가 아니라 20년간의 휴전일 뿐이다”라고 악담을 늘어놓았다. 결과적으로 이 말은 사실이 되었는데, 제2차 세계 대전은 그로부터 20년 하고 64일 뒤에 발발했다.<ref>{{cite book|꺾쇠표없음=예|author1=Williamson Murray|author2=Jim Lacey|title=The Making of Peace: Rulers, States, and the Aftermath of War|url=https://books.google.com/books?id=TmBN9fBcuO8C&pg=PA209|year=2009|publisher=Cambridge UP|page=209}}</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