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수 대첩"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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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은 모두 을지문덕의 기만에 의한 유도 작전이었다. 수나라군의 군사가 굶주린 기색이 있음을 보고 이들을 [[피곤]]하게 만들려고 매번 싸울 때마다 달아났던 것이었다. 을지문덕은 우중문에게는 희롱하는 [[시 (문학)|시]]를 보내고, 우문술에게는 거짓 항복하며 만약 [[군대]]를 돌리면 [[영양왕|왕]]을 모시고 행재소(行在所)로 가서 뵙겠다고 하였다. 수나라군은 지칠대로 지쳐서 다시 싸우기가 힘들었던 데 반해 [[평양]]성은 험하고 견고하여 단숨에 함락시키기가 어려웠다. 그리하여 하는 수 없이 거짓 항복을 명분으로 삼아 회군을 시작하였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건제를 유지하여 방진(方陣)을 갖추며 퇴각하였고 이에 을지문덕은 끈질기게 추격하여 가다 싸우기를 반복하였다.
 
7월(음력), 마침내 수나라군이 살수에 이르렀다. 반 즈음 건넜을 때 고구려군이 뒤에서 후군을 공격했고 수나라 장수수나라군은 [[신세웅]]이 [[작전 중 사망|전사]]하는 등 여러 군대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장수와 병사들이 달아났다. 하루 [[밤 (시간)|밤]][[낮]] 만에 압록수에 닿았으니 그 거리가 450리였다. [[왕인공]](王仁恭)이 최후의 부대가 되어 가까스로 고구려군을 막아냈다. 평양 밖 포구에 주둔하고 있던 [[내호아]]는 살수대첩의 소식을 듣고는 퇴각하였다.
 
== 결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