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디마지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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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입단 연도 = MLB / [[1936년]]
|드래프트 순위 = MLB / [[1951년]]
|첫 출장 = MLB / [[1936년]] [[5월 3일]] </br /> 구장명 대 [[상대 팀]]전
|마지막 경기 =
|획득 타이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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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계 이주민의 후손으로 [[1914년]] [[11월 25일]] [[캘리포니아 주]]에서 출생하였다.
 
[[1930년대]]부터 PCL의 샌프란시스코의 한 팀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하였다. [[1933년]] 그곳에서 61경기 연속 안타 기록으로 매스컴과 메이저리그메이저 리그 구단의 관심을 끌면서 명문 구단들의 스카웃 경쟁이 불이 붙었고, [[뉴욕 양키스]]와 [[1934년]] 입단 계약을 맺게 되었다. 무릎 부상으로 바로 메이저리그에메이저 리그에 올라가진 못하였다.
 
[[1936년]] 양키스의 주전 중견수 [[얼 콤스]]가 은퇴를 준비하자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고 본격적인 메이저 리그 야구 생활을 시작하였다. 형 [[빈스 디마지오]]와 동생 [[돔 디마지오]]와 함께 메이저 리그 야구에서 활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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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MVP는 4할의 타율을 친 [[테드 윌리엄스]]와 접전이 예상되었지만, 신사적인 매너와 조용한 성격으로 기자들에게 좀 더 인기가 있던 디마지오에게 돌아가며 자신의 두 번째 MVP를 수상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때 [[행크 그린버그]]와 [[밥 펠러]]로부터 시작된 메이저리그메이저 리그 스타 선수들의 군입대로 그 역시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야구장을 떠나게 되었고, [[1946년]]이 되어서야 다시 양키스 구장을 찾을 수 있었다. 긴 공백 기간으로 인해 처음으로 2할대 타율로 추락하였고, 팀 역시 보스턴과 디트로이트에 10경기 이상 쳐지며 리그 3위에 머물렀지만, 이듬해 다시 3할대로 복귀하여 신인 포수 [[요기 베라]]와 함께 팀공격을 이끌어 나가며 팀을 월드시리즈에서 정상을 차지하자 개인 성적에서 자신을 모두 앞섰던 테드 윌리엄스를 제치고 세 번째 MVP를 차지하게 되었다.
 
[[1948년]] 39홈런과 155타점으로 리그 홈런왕과 타점왕을 차지하며 4번째 개인 MVP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클리블랜드의 감독 겸 선수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시킨 [[루 부드로]]에게 압도적인 표가 몰려 최초의 4회 MVP 수상은 실패로 돌아갔다. 발꿈치 부상과 다리 부상으로 [[1949년]] 시즌 절반을 결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