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4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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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년]], 형 [[조지 4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대관식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발언을 하여 측근들을 당황하게 하였지만, 화려하게 하지 않고 검소하게 치른다는 조건하에 마지못해 대관식 거행을 받아들였다. 65살이라는 고령의 나이에 왕이 되었지만, 청년기에 런던을 자유롭게 돌아다닌 것처럼 시종조차 대동하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길거리를 거닐다가 우연히 왕과 마주친 런던 시민들은 기뻐하며 왕에게 다가가 그와 악수를 하거나 말을 걸거나 하였다. 당연히 윌리엄의 인기는 매우 높아졌다.
 
윌리엄 4세의 치세 동안, 지방 정부의 민주화와 대영제국 내의 [[아동노동]]법 제한 및 [[노예제도]] 폐지 등의 사회개혁이 이루어졌는데, 그가 이룬 가장 중요한 정치적 업적은 [[1832년]]의 [[선거법 개정]]이었다. 왕족 및 [[귀족]]의 권한을 크게 축소시킨다는 내용을 담은 이 개정법은 당연히 영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1832년]] 5월, [[니콜라이 1세|러시아]], [[루이 필리프 1세|프랑스]] 그리고 영국이라는 세 열강국 간의 회의가 영국 런던에서 열렸다. 이 [[런던 회의 (1832년)|런던 회의]]는 [[그리스]]에 안정적인 정부를 성립하기 위해 모인 국제 회의였다. 이 협상으로 바이에른 왕자 [[오톤 (그리스)|오톤]]을 임금으로 세워 [[그리스 왕국]]이 성립하였다.
 
윌리엄 4세는 부왕이나 형만큼 정치에 간섭하지는 않았지만, [[1834년]]에 의회의 의사를 거스르고 수상을 임명했다. 이후, 영국 정치에서 의회의 의사를 거스르고 수상을 임명한 군주는 없다.
 
[[1837년]], 윈저 성에서 간경변으로 서거하였다. 윌리엄 4세는 영국의 왕으로서 [[하노버의 군주|하노버의 왕]]을 겸임한 마지막 국왕이었다. 그의 죽음과 함께 영국과 [[하노버 왕국]]의 [[동군연합]] 관계는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