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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외 관계'''에서는 미국과 다른 나라들 간의 관계를 다룬다. 미국의 영향력은 15조달러를 넘는 경제<ref>Bureau of Economic Analysis, http://www.bea.gov/newsreleases/national/gdp/2011/pdf/gdp4q10_adv.pdf</ref>, 세계의 약 4분의1을 차지하는 GDP, 세계의 약 43%를 점유하는 7110억달러의 국방비에 의하여 뒷받침되고 있다. 안전보장에 관한 전략의 선택이나 국익의 정의 등 그 목표를 달성하는 외교정책에 관하여 궁극적인 권한은 대통령이 가지고 있고, 다른 나라의 외무부에 해당하는 [[국무부]]가 국가간의 외교를 담당하고 있다. [[쿠바]] 등 소수의 국가를 제외하고는, [[미국]]은 대다수의 나라들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미국은 [[국제 연합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 이사국이며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대한민국]], [[일본]], [[이스라엘]]과 그 밖의 [[북대서양 조약기구]] 회원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현 국무부장관은 [[존 케리]]이다.
 
==미국의 대외 정책==
{{정리 필요 문단|날짜=2010-2-11}}
미국의 외교정책의 수립과 이행에 대한 주된 책임을 대통령이[[미국의 대통령|대통령]]이 지게 되어 있으나, 의회도[[미국 의회|의회]]도 이에 대해 강한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 우선 의회는 전쟁을 선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하원은 대통령의 외교정책 수행에 필요한 예산에 대해 강한 통제력을 가지고 있으며, 상원도 재원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다. 특히 상원의 경우에는 고급 외무 관리의 임명에 대한 통제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이 체결하는 모든 조약에 대한 비준권을 가지고 있다. 의회의 이와 같은 제재권한은 행정부와 의회의 갈등을 초래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에드워드 코르윈([[:en:Edward Samuel Corwin|Edward Samuel Corwin]]) 교수는 미국의 정치체계가 외교정책에 있어서 행정부와 의회 간의 투쟁을 초래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 좋은 예로서는 [[상원]]이 국제연맹 헌장의 비준을 거부한 사실을 들 수 있다. 의회와 행정부간에는 긴밀한 협조가 이루어지고 있다. 유엔헌장 비준 당시의 의회와 행정부간의 긴밀한 협조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협동외교는 한국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는 '초당외교'라는 말과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베트남 전쟁]]으로 말미암아 파생된 행정부와 의회간의 갈등은 심각한 형편이었다. 그러나 의회가 대통령에 가하는 압력은 행정부의 독주를 견제하는 동시에 건전한 방향의 미국 대외정책을 모색하고 있다. 의회는 국민의 대표기구로서 국민의 의사와 직결돼 있다. 따라서 대외정책의 수립이나 이행 과정에도 항상 의회를 '문제아'로 취급하거나, 또는 그러한 범주내에 의회의 기능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의 외교정책은 고립주의로부터 시작되었으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개입주의와 고립주의가 병행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윌슨 대통령은 국제연맹의 창설을 제창하고, 주도함으로써 고립주의를 탈피하려 했으나, 상원이 국제연맹 헌장의 비준을 거부함으로써 다시 신고립주의 시기로 돌입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미국은 고립주의, 세력균형, 집단 안전보장이라고 하는 3개의 외교노선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그당시 미국인들에게는 세력균형 정책이 유럽의 권력 정치를 연상시켰기 때문에 거부되었으며, 집단 안전보장정책은 새로운 것이기는 했지만 미국인들이 세력균형 정책과 집단 안전보장정책을 명백히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에 배척되었다. 따라서 미국인들은 그들에게 보다 익숙하고 안전하게 보이는 고립주의로의 도피를 선택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이 세계정치에 적극 참여하도록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은 과거의 교훈을 거울삼아 새로운 시대의 지도적 위치를 떠맡아, [[유엔]]의 창설과 운영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냉전의 양상이 초래되자, 미국은 [[유엔]]이라는 집단 안전보장체제만으로는 세계평화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집단 방위체제와 상호 방위체제의 구축에 노력하게 되었다. 이러한 바탕 위에 소위 말하는 봉쇄정책이 등장했으며, 이는 구 소련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공산세력을 군사적으로 봉쇄하고,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는 데 그 목적을 두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정책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접어들면서 점차 약화하였으며, '닉슨 독트린' 이후로 급격히 약화되어 그 형태마저 찾아보기 어렵다. 더욱이 카터의 등장 이후 모든 국가에 대한 여행제한 철폐를 비롯한 개방정책이 적극 추진되고 있으며, 무장에 의한 평화보다 협상을 통한 평화외교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ref name="글로벌 국제정치 미국의 정치">《[[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정치/국 제 정 치/세계각국의 정치사정/미 국#미국의 외교|미국의 외교]]〉</ref> 20세기 중후반의 냉전의 갈등을 겪고 난 이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남게 된 미국은 대량 살상무기 확산, 인권개선, 민주주의의 신장, 환경문제 등 새로운 범세계적인 문제의 외교 현안화에 노력하면서 유엔 등 다자협력체제를 통한 해결을 도모하고 있다. [[쿠바]] 등 소수의 국가를 제외하고는, [[미국]]은 대다수의 나라들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미국은 [[국제 연합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 이사국이며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대한민국]], [[일본]], [[이스라엘]]과 그 밖의 [[북대서양 조약기구]] 회원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 대외 관계사 ==
미국의 외교정책은 고립주의로부터 시작되었으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개입주의와 고립주의가 병행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윌슨 대통령은 국제연맹의 창설을 제창하고, 주도함으로써 고립주의를 탈피하려 했으나, 상원이 국제연맹 헌장의 비준을 거부함으로써 다시 신고립주의 시기로 돌입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미국은 고립주의, 세력균형, 집단 안전보장이라고 하는 3개의 외교노선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그당시 미국인들에게는 세력균형 정책이 유럽의 권력 정치를 연상시켰기 때문에 거부되었으며, 집단 안전보장정책은 새로운 것이기는 했지만 미국인들이 세력균형 정책과 집단 안전보장정책을 명백히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에 배척되었다. 따라서 미국인들은 그들에게 보다 익숙하고 안전하게 보이는 고립주의로의 도피를 선택했던 것이다. <ref name="글로벌 국제정치 미국의 정치"/>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의 외교정책은 고립주의로부터 시작되었으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개입주의와 고립주의가 병행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윌슨 대통령은 국제연맹의 창설을 제창하고, 주도함으로써 고립주의를 탈피하려 했으나, 상원이 국제연맹 헌장의 비준을 거부함으로써 다시 신고립주의 시기로 돌입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미국은 고립주의, 세력균형, 집단 안전보장이라고 하는 3개의 외교노선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그당시 미국인들에게는 세력균형 정책이 유럽의 권력 정치를 연상시켰기 때문에 거부되었으며, 집단 안전보장정책은 새로운 것이기는 했지만 미국인들이 세력균형 정책과 집단 안전보장정책을 명백히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에 배척되었다. 따라서 미국인들은 그들에게 보다 익숙하고 안전하게 보이는 고립주의로의 도피를 선택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이 세계정치에 적극 참여하도록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은 과거의 교훈을 거울삼아 새로운 시대의 지도적 위치를 떠맡아, [[유엔]]의 창설과 운영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냉전의 양상이 초래되자, 미국은 [[유엔]]이라는 집단 안전보장체제만으로는 세계평화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집단 방위체제와 상호 방위체제의 구축에 노력하게 되었다. 이러한 바탕 위에 소위 말하는 봉쇄정책이 등장했으며, 이는 구 소련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공산세력을 군사적으로 봉쇄하고,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는 데 그 목적을 두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정책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접어들면서 점차 약화하였으며, '닉슨 독트린' 이후로 급격히 약화되어 그 형태마저 찾아보기 어렵다. 더욱이 카터의 등장 이후 모든 국가에 대한 여행제한 철폐를 비롯한 개방정책이 적극 추진되고 있으며, 무장에 의한 평화보다 협상을 통한 평화외교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ref name="글로벌 국제정치 미국의 정치">《[[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정치/국 제 정 치/세계각국의 정치사정/미 국#미국의 외교|미국의 외교]]〉</ref> 20세기 중후반의 냉전의 갈등을 겪고 난 이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남게 된 미국은 대량 살상무기 확산, 인권개선, 민주주의의 신장, 환경문제 등 새로운 범세계적인 문제의 외교 현안화에 노력하면서 유엔 등 다자협력체제를 통한 해결을 도모하고 있다. [[쿠바]] 등 소수의 국가를 제외하고는, [[미국]]은 대다수의 나라들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미국은 [[국제 연합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 이사국이며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대한민국]], [[일본]], [[이스라엘]]과 그 밖의 [[북대서양 조약기구]] 회원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식민지 시대 (1493-1776)===
현재 미국 영토에서의 식민지 ‘개발’은 처음부터 다민족 국가가 될 운명을 예정하듯이 진행되었다. [[버지니아]]와 [[캐롤라이나]]에는 영국인([[뉴잉글랜드]])이 식민지를 개척하였다. 16세기, [[프랑스인]] [[자크 카르티에]]의 탐험으로 시작된 프랑스의 북미 식민지, [[누벨프랑스]]의 영토는 전성기에 [[뉴펀들랜드]]에서 [[로키 산맥]]까지 그리고 [[허드슨 만]]에서 [[멕시코 만]]에 이르렀다.<ref>Control and Order in French Colonial Louisbourg, 1713–1758, Andrew John Bayly Johnston, 2001, MSU Press pp. 8–9</ref> 현재의 미국 영토에 해당하는 곳은 [[누벨프랑스]]의 한 행정구역이었던 [[프랑스령 루이지애나]]로서, [[미시시피 강]] 유역의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으며, 남북으로 [[오대호]]에서 [[멕시코 만]]까지 동서로는 [[애팔래치아 산맥]]에서 [[록키 산맥]]까지 뻗어 있었다. 이처럼 ‘개발’은 주로 영국인과 프랑스인 두 민족에 의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뉴욕]]과 [[뉴저지]]에는 [[네덜란드]]([[뉴네덜란드]])가, [[델라웨어]]에는 스웨덴인([[뉴스웨덴]])이, [[플로리다]]에는 스페인 사람([[누에바 에스파냐]])이 각각 나름대로 오늘의 미국 범위의 식민지를 구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