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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2=오기가야쓰 우에스기 가문<br />야마노우치 우에스기 가문<br />아시카카 [[고가 구보]]
|지휘관1=[[호조 우지야스]]<br />성수비대장 [[호조 쓰나시게]]
|지휘관2=[[우에스기 도모사다 (1525년)|우에스기 도모사다]]<br />[[우에스기 노리마사]]<br />[[아시카가 하루우지]]
|병력1=수비병력 3,000명<br />원군 8,000명
|병력2=연합군 85,000명
}}
 
'''가와고에 성 전투'''({{ja-y|河越城|かわごえじょう}}の{{ruby|戦|たたか}}い)는 일본 [[센고쿠 시대]]에 일어난 전투로 [[간토 지방|간토]](關東)지역의 정세를 뒤바꾼 중요한 전투 중 하나이다. [[호조 우지야스]](北条氏康)군 대 [[우에스기 노리마사]](上杉憲政), [[우에스기 도모사다 (1525년)|우에스기 도모사다]](上杉朝定), [[아시카가 하루우지]](足利晴氏) 등의 연합군이 [[무사시노쿠니|무사시]]국(武蔵国)의 [[가와고에 성]](河越城)<ref>현재 [[사이타마 현]](埼玉県) [[가와고에 시]](川越市)</ref> 부근에서 전투를 벌여 호조군이 대승리를 거두었다. [[오케하자마 전투]](桶狭間の戦い), [[이쓰쿠시마 전투]](厳島の戦い)와 더불어 일본 3대 야전(日本三大夜戦)으로 손꼽히며, '''가와고에 야전'''(河越夜戦)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 배경 ==
[[무로마치 시대]] 후기부터 [[간토 지방]]의 패권을 둘러싸고 [[고가 구보]](古河公方)와 [[간토 간레이]](関東管領)이 대립으로 일어난 [[쿄토쿠의 난]](享徳の乱), 간토 간레이 직을 세습하던 우에스기가 내부에서도 야마노우치 우에스기 가문(山内上杉家)와 [[사가미노쿠니사가미 국|사가미]](相模), [[무사시노쿠니무사시 국|무사시]](武蔵)를 기반으로 힘을 키운 우에스기 가문의 서가(庶家)인 오기가야쓰 우에스기 가문(扇谷上杉家)의 대립으로 일어난 [[조쿄의 난]](長享の乱)등 많은 전란이 일어나 간토 지방은 혼란한 상황이었다.
 
이 혼란한 시기를 틈타 오기가야쓰 우에스기 가문의 영지였던 사가미로 [[호조 소운]](北条早雲)이 진출하여 오기가야쓰 측인 오모리씨(大森氏), 미우라씨(三浦氏)를 차례로 멸망시키면서 세력을 넓혔다. 소운의 아들 [[호조 우지쓰나]](北条氏綱)는 [[에이쇼의 난]](永正の乱)으로 고가 구보와 간토 간레이 양측이 내분으로 혼란스러워 하는 틈을 타 무사시로 진출하여 [[에도 성]](江戸城)과 오기가야쓰 우에스기 가문의 본거지인 가와고에 성을 함락하여 오기가야쓰 우에스기가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우지쓰나가 병으로 사망하자, 고가 구보, 간토 간레이(야마노우치 우에스기 가문), 오기가야쓰 우에스기 가문, 세 가문은 동맹을 맺고 호조 가문에 대한 반격을 개시하여, 극소수를 제외한 간토의 무사 대부분을 모아 [[호조 우지야스]]를 공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