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낭 포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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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참모총장으로 복귀한 포슈는 1918년 봄 "연합군 [[총사령관]]([[대원수]])"로 임명된다. 포슈는 [[제2차 마른 전투]]를 통해 독일군의 [[춘계 공세]]를 막아내 파리를 지켰으며, 이 공으로 [[프랑스 원수]]의 자리에 오른다. 1918년의 1차대전 서유럽 육상전에서의 연합군의 승리는 사실상 포슈 혼자서 이루어낸 성과이다.<ref name="Larry H. Addington 1994 167–68">{{cite book|author=Larry H. Addington|title=The Patterns of War Since the Eighteenth Century|url=https://books.google.com/books?id=4Nkz3yfLYt0C&pg=PA167|year=1994|publisher=Indiana UP|pages=167–68|이탤릭체=예}}</ref>
 
1918년 11월 11일, 포슈는 독일의 휴전 제안을 받아들였다. 포슈는 독일이 프랑스를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만들려고 휴전협정에 개입했다. [[베르사유 조약]]이 1919년 6월 28일 조인되자 포슈는 프랑스가 라인란트를 합병할 수 없다는 결과에 분노하여 “이것은 평화가 아니라 20년간의 휴전일 뿐이다”라고 악담을 늘어놓았다. 결과적으로 이 말은 사실이 되었는데, 제2차 세계 대전은 그로부터 20년 하고 64일 뒤에 발발했다.<ref>{{cite book|꺾쇠표없음=예|author1=Williamson Murray|author2=Jim Lacey|title=The Making of Peace: Rulers, States, and the Aftermath of War|url=https://books.google.com/books?id=TmBN9fBcuO8C&pg=PA209|year=2009|publisher=Cambridge UP|page=209}}</ref> 포슈의 말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 [[더글러스 헤이그]]의 말과 함께 [[베르사유 조약]]의 불합리를 이야기하기 위해 인구에 회자되곤 한다. 그러나 케인스와 헤이그의 말이 독일에게 너무 가혹한 조약 내용이 독일인에게 복수의 동기부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한 반면, 포슈는 반대로 독일의 전쟁수행능력을 완전히 거세하지 못했기 때문에 독일이 반드시 다시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개탄한 것이다.
 
==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