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18번째 줄: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河東 雙磎寺 眞鑑禪師塔碑)는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의 [[비석]]이다. [[1962년]] [[12월 20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47호로 지정되었다.
 
[[신라 정강왕]]이 [[진감선사]]의 높은 도덕과 법력을 앙모하여 대사가 도를 닦은 옥천사를 쌍계사로 고친 뒤 [[정강왕]] 2년(887년)에 건립한 것으로 고운 [[최치원]]이 비문을 짓고 썼으며 승, 빈영이 새겼다. 이 탑비는 고운 최치원의 사산비의 하나로 유명하다. 진감선사는 애장왕 5년(804년)에 입당, [[흥덕왕]] 5년([[830년]])에 귀국, 쌍계사를 창건하고 역대 왕의 존경을 받다가 [[문성왕]] 12년(85) 쌍계사에서 77세로 시적하였다. 비의 높이는 3m 63cm, 탑신의 높이는 2m 2cm, 혹은 1m, 귀부와 이수는 화강암이고 비신은 흑대리석이다. 현재 비신의 우측 상부에 크게 흠락된 부분이 있고 또 균열이 상당히 심하다.<ref>[[1936년]] [[7월 4일]] 발생한 규모 5.1의 지진으로 손상을 입었다고 한다.</ref> 중앙에 높직한 비좌를 마련했는데 4면에는 운문이 있고 상면에는 비신에 맞게 구멍이 뚫어져 있다. 귀두는 짧고 추상적인 동물의 머리로 표현되어 [[신라]] 후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수는 양측을 비스듬히 자른 오각형으로 4면에 쟁주하는 용이 있고 전면 중앙에 방형으로 깊이 판 제액이 마련되어 있으며 비문의 자경은 2.3cm, 자수는 2,423자이다.
중앙에 높직한 비좌를 마련했는데 4면에는 운문이 있고 상면에는 비신에 맞게 구멍이 뚫어져 있다. 귀두는 짧고 추상적인 동물의 머리로 표현되어 [[신라]] 후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수는 양측을 비스듬히 자른 오각형으로 4면에 쟁주하는 용이 있고 전면 중앙에 방형으로 깊이 판 제액이 마련되어 있으며 비문의 자경은 2.3cm, 자수는 2,423자이다.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