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존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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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존유'''(具存裕)는 대한민국 성씨인 [[능성 구씨]]의 시조이다. 구존유는시조이며 [[고려]]의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 검교상장군(檢校上將軍)을 지냈다지다. 냈다.
 
구존유는 송이 몽골에 패하게 되자 1224년(고종 11년) 고려 금성(錦城: 나주의 옛 이름)으로 망명하였던 송나라의 한림학자 주잠(朱潛)(대한민국 신안주씨 시조)의 사위이다. 당시 주잠(朱潛)은 원의 추격이 계속되자 고려 능성(綾城)현 구씨(具氏) 집성촌에서 은거(隱居)하며 구적덕(具積德)이란 이름으로 개명하여 원나라 추격군을 피해 지내다 고려인 구존유(具存裕)를 만나 자신의 딸을 시집 보내다고 한다. 주잠(朱潛)이 고려로 망명할시 동행한 이들중 아들은 있으나 딸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고려 귀화후 출산한 딸이 구존유와 혼인한 것으로 추측되어진다.
일부 구존유가 주잠과 동행하여 망명해 왔다고 추정하는 설도 있지만, 중국측 사료에는 고려인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삼국시대 이전부터 한반도에는 토착 구(具)씨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능성현(綾城縣) 토성조(土姓條)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능성현(綾城縣) 토성조(土姓條)에도 구씨(具氏)를 능성현(綾城縣)의 대표적인 토착 성씨로 기록하고 있다. 구존유가 송에서 망명해 왔다는 주장은 당시 만연했던 모화사상에 기초하여 시조와 중국과의 관련성을 부각하고자 했던 시도로 보인다.
 
[[능성구씨]]는 시조 [[구존유]] 이래로 그 후손이 고려 조정에 계속 진출하여 가문의 명성을 높였다. 2세는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구민첨(具民瞻), 3세는 문하좌정승(門下左政丞)을 지낸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 구연(具珚), 4세는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 구예(具藝), 5세는 전리판서(典理判書)를 지낸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 구영검(具榮儉), 6세는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 문정공(文貞公) 구위(具禕)와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를 지낸 구흥(具興)과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지낸 구의(具義)가 유명하다. 그리고 7세 문절공(文節公) 구홍(具鴻)은 조선의 개국에 협력하지 않고 은둔하여 고려 왕조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
이후 [[능성 구씨]]는 시조 존유(存裕)의 7세손부터 가세가 크게 번창하여 사재감 판사(司宰監判事) 현좌(賢佐)를 파조(派祖)로 하는 판사공파(判事公派), 공조 전서(工曹典書) 현로(賢老)를 파조로 하는 전서공파(典書公派), 시랑(侍郞) 영량(英良)을 파조로 하는 시랑공파(侍郞公派), 판안동 대도호부사(判安東大都護府使) 성량(成亮)을 파조로 하는 판안동공파(判安東公派)를 비롯하여 좌정승공파(左政丞公派)·도원수파(都元帥派)·재신파(宰臣派)·낭장공파(郎將公派)·감무공파(監務公派)·임천군사공파(林川郡事公派)·참판공파(參判公派)·문천군사공파(文川郡事公派)의 12개 파(派)로 크게 갈리었으며 조선 제16대 국왕 [[조선 인조|인조대왕]]의 어머니이자 [[조선 원종|원종]]의 비인 [[인헌왕후]](仁獻王后)를 배출하는 등 [[영조|영조대]](英祖代)까지 [[조선|조선왕조]]의 권력의 핵심에서 가문의 세를 떨치었다.
 
이후 [[능성 구씨]]는 시조 존유(存裕)의 7세손부터 가세가 크게 번창하여 사재감 판사(司宰監判事) 현좌(賢佐)를 파조(派祖)로 하는 판사공파(判事公派), 공조 전서(工曹典書) 현로(賢老)를 파조로 하는 전서공파(典書公派), 시랑(侍郞) 영량(英良)을 파조로 하는 시랑공파(侍郞公派), 판안동 대도호부사(判安東大都護府使) 성량(成亮)을 파조로 하는 판안동공파(判安東公派)를 비롯하여 좌정승공파(左政丞公派)·도원수파(都元帥派)·재신파(宰臣派)·낭장공파(郎將公派)·감무공파(監務公派)·임천군사공파(林川郡事公派)·참판공파(參判公派)·문천군사공파(文川郡事公派)의 12개 파(派)로 크게 갈리었으며 조선 제16대 국왕 [[조선 인조|인조대왕]]의 어머니이자 [[조선 원종|원종]]의 비인 [[인헌왕후]](仁獻王后)를 배출하는 등 [[영조|영조대]](英祖代)까지조선 중후기 이후 [[조선|조선왕조]] 권력의 핵심에서핵심 가문으로 가문의 세를 떨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