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의 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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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왕자의 난]]으로 강씨 소생의 아들들인 왕세자 [[이방석]]과 무안군 [[이방번]]이 살해되고 한씨 소생의 둘째 아들인 이방과가 왕세자로 등극하였다가 한달 뒤 즉위하니 그가 곧 [[조선 정종|정종]]이다. 쿠데타의 주동자인 한씨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 [[조선 정종|정종]]에게 자리를 양보한 것은 난을 이으킨 이유가 장자승계의 유학의 법칙을 따르기 위함이었음을 명분으로 하여 유학자의 심기를 누그러트림과 동시에 이복이지만 친아우들을 살해한 패륜의 책임을 당장 벗어나기 위함이었으며, 또한 유약하고 무능한 형 [[조선 정종|정종]]에게서 자리를 양도받을 자신이 있었던 탓으로 보인다.
 
이후 [[조선 정종|정종]]을 압박하는 [[이방원]]의 행위에 여러 왕자들이 분개하다가 그 중 [[이방원]]과 함께 비어있는 왕세자의 자리를 노리던 [[이방간]]이 [[조선 정종|정종]] 2년(1400년) [[음력 1월]]에 난을 일으키는데 이것이 [[제2차 왕자의 난]]이다. 이를 제압한 [[이방원]]은 [[2월 25일]]([[음력 2월 1일]])에 왕세자로왕세제로 등극하고, 그 해 [[11월 28일]]([[음력 11월 13일]])에 [[조선 정종|정종]]에게 왕위를 양위받아 즉위하니 그가 [[조선 태종|태종]]이다.
 
== 의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