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천량 해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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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8월 30일]]([[음력 7월 18일]]) 이순신은 해안 지역을 직접 돌아본 후 대책을 마련한다고 권율에게 요청하고 [[송희립]] 등 9명의 군관과 함께 현지로 출발한다. 삼가, [[단성]], [[진주]]를 거쳐 [[9월 2일]]([[음력 7월 21일]]) 노량에 도착했는데, 이곳에서 거제현령 [[안위]]와 영등포 만호 조계종 등을 만나 패전 상황을 듣고 대책을 논의한다.
 
=== 칠천량 해전의 지휘관 ===
 
조선 수군의 지휘관은 원균이었다. 원균도 이 싸움이 조선에게 불리하고 참패할 것을 우려했지만 조정의 무리한 요구로 어쩔 수 없이 전투를 감행한다. 원래 이순신이 조선 수군을 승리로 이끌었던 이유는 적진에 들어가서 싸우는 방식이 아니라 적선을 자기 진영에 유인해서 함정에 빠뜨리는 방식으로 일본 수군의 전력을 조금씩 상대하는 전투였다. 사실상 조선 수군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이었다. 그런데 1,000여척에 달하는 적진에 뛰어드는것이 자살 행위임을 원균이 모를리 없었다. 이 전투에서 원균도 전사한다.
 
== 인구 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