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교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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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교회와의 화해 ====
종교개혁 당시 개혁교회의 성찬론인 영적임재설은 루터교회의 실재설과 공존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ref> 지원용 역, <<신앙고백서>>, 컨콜디아사, 1988 </ref> 마르틴 루터와 울리히 츠빙글리는 마르부르크에서 연합을 위해 만나 대부분의 신학에서 일치를 보았으나 성찬에 대해서는 끝내 일치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때문에 개혁교회와는 같은 프로테스탄트 진영임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관계에 놓여져 있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로이엔베르크에서 루터교 신학자와 개혁교 신학자가 만나 루터교회의 실재설과 개혁교회의 영적임재설이 서로 수용할 수 있는 입장임을 확인하였다. 이후 개혁교회와의 연합이 활발히 이루어져 프랑스에서는 루터교회와 개혁교회가 통합되어 프랑스 개신교 협회로 단일화되었고, 독일의 경우 독일개신교회(EKD)에서 같이 활동하고 있다.
 
==다른 교단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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