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고등학교|함경남도 함흥 영생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청진여자고급중학·청진제일고급중학 등에서 교편생활을 하다가 월남하였다.
[[1930년]] <《[[아이생활]]>》, <《[[신소년]]>》 등에 동요 《〈버드나무 열매》〉 등을 발표하고, <《[[조선일보]]>》 현상문예에 동요 《〈민들레와 울아기》〉가 당선되었으며, 그 뒤 《〈닭》〉을 비롯한 동요·동시를 발표하여 문단에 등장하였다.
[[1939년]]을 전후하여 동화와 아동소설도 쓰기 시작하여 <《[[동아일보]]>》에 《〈돌멩이》〉(1940), 《〈토끼 삼형제》〉, <〈[[매일신보]]>》에 《〈전등불 이야기》〉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월남 후 피난지 [[부산광역시|경상남도 부산]]에서 독서 지도와 글짓기지도 등 아동문학의 보급을 위하여 힘쓰는 한편, <《[[새벗]]>》·<《[[어린이 다이제스트]]>》 주간([[1952년]]), <《[[아동문학]]>》 편집위원([[1962년]]), 한국보육대학, [[이화여자대학교]], [[연세대학교]] 강사([[1959년]] ∼ [[1963년]]), [[한국아동문학연구회]] 회장(1960), [[한국문인협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1963년]] 문예상을 수상한 후 [[간경변|간경화]]로 사망하였다. 사후 [[1965년]]에 '소천문학상'이 제정되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아름답고 무한한 동심의 세계와 착하고 고운 소년 소녀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대표작으로 《〈[[꿈을 찍는 사진관]]》〉(《소년세계》 1954.3)<ref>사람들의 아름다운 기억을 사진으로 찍는 사진관 이야기.</ref>, 《[[호박꽃 초롱]]》(1941, 박문서관), 《[[꽃신]]》<ref>구두를 만드는 노동자가 아기를 위해 예쁜 꽃신을 짓는 이야기.</ref> 등이 있다.
== 인간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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