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마르 (조지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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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르와 다비트는 두 명의 자녀를 낳았다. 1191년에 여왕은 아들 게오르게(훗날 [[조지아의 게오르게 4세|게오르게 4세 (라샤)]])의 출생 소식을 왕국에 널리 알리고 축하 행사를 열었다. 딸 [[조지아의 루수단|루수단]]은 1193년에 태어났고 훗날에 그녀의 오빠를 계승해 조지아의 군주가 되었다.
 
예술 작품 뿐만아니라, 헌장, 동전에서도 등장하는 [[부마도위|국서]](國婿)인 다비트의 지위는 왕의 위엄은 남성적인 성격도 띄어야 한다는 필요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이었고, 그는 타마르와 왕위를 공유하고 타마르에게서 얻은 권력만 지니는 보다 하급의 통치자에 머물러 있었다.<ref name="Lordkipanidze-143"/><ref>Eastmond (1998), pp. 135–137.</ref> 타마르는 계속 "[[왕중왕|왕중 왕]]"(''메페타 메페'')라고 불리었다. 조지아에서, [[문법상 성별]]이 없는 용어인 ''메페''("왕")는 남성적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지 않으며 "주권자"라고 번역될 수 있다.<ref>Rapp (2003), p. 263.</ref><ref name="Eastmond-109">Eastmond (1998), p. 109.</ref> 그리고, ''메페''는 [[왕비]] 혹은 왕의 모친이나 왕보다 연장자인 왕의 여성 친인척에게 적용되는 용어인 ''데포팔리''("여왕")의 뜻도 가지고 있다. 타마르는 조지아 연대기와 다소의 헌장에서 때때로 ''데포팔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타마르에의 ''메페''라는 칭호는 여성들 가운데서 그녀의 고유한 지위를 상징하기 위해 기술되었을 수도 있다.<ref name=" Eastmond-109"/>
 
== 외교 정책과 군사 작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