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5번째 줄:
== 역사 ==
[[견훤]]은 원래 [[신라]] [[상주]] 지방 농민이었다가 [[신라]]군에 들어가 서남해
[[901년]](효공왕 5) [[대야성]](大耶城)을 공격하고 [[918년]]([[경명왕]] 2)에 [[고려 태조|왕건]](王建)의 건국을 하례하여 외교적으로 유대를 가지려고 하였다. 그러나 [[920년]](경명왕 4)에 [[견훤]]이 [[대야성]]을 공격하고 진례성(進禮城)<ref>[[무주군|무주]]</ref>으로 진격할 때 [[신라]]는 [[고려]]의 [[고려 태조|왕건]]에게 구원을 청하여 그 도움을 얻었다. 이로 인하여 후백제와 [[고려]]와의 사이는 좋지 못하게 되고 반대로 [[신라]]·[[고려]]의 관계는 친밀하게 되어 후백제에게 공동의 적으로 종종 [[군사]] 행동을 가해 왔다. 이에 [[견훤]]은 먼저 [[신라]]를 징벌(徵伐)하려고 [[927년]]([[경애왕]] 4) 10월에 대병을 거느리고 [[신라]] 서울 [[경주시|경주]]로 쳐들어가 마침 [[포석정]](鮑石亭)에서 잔치를 벌여 흥에 취하고 있는 틈에 수도 [[경주시|경주]]를 습격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