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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과 이단 배척 ==
터툴리안은 기독교 변증가로서,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 "박해는 [[그리스도인]]의 무죄를 변증한다." 등의 문장으로 박해가 [[교회]]를 소멸시키지 못한다고 말했다. [[종교]]적인 도덕성이 민감했던 그는 [[로마제국]]의 [[신]]들을 조각하는 교우들에게 '군신 [[마르스]]를 조각할 수 있다면, 찬장도 만들 수 있다'면서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충고했고, 재혼 및 박해를 피한 도피, 배교, 살인, 간음을 죄로 규정했다. 또한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수난을 십자가의 수치라고 말하는 [[마르키온]]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수치는 [[기독교]] 신앙에 필수적이다. 네가 하나님에게 부당하다고 하는 것은 모두 나에게는 유익하다. 하느님의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사실은 부끄러워할 일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하느님의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셨다는 사실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에 믿을 만한 것이다. 묻히신 분이 [[예수의 부활|부활]]하셨다는 사실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확실하다."라고 말함으로써, [[예수]]의 인성을 부정<ref>
마르키온은 예수가 인간이 아니라, 인간처럼 보일 뿐이라는 가현설을 주장한다. 그래서 교회는 마르키온에 대항,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한다. 《쉽고 재미있는 교회사》/유재덕 지음/작은 행복.</ref>하는 [[이단]]종파인 마르키온주의에 저항하였다.
터툴리안의 [[도덕]]적인 민감성은 그를 [[보편교회]](Catholic church)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그 이유는 당시 [[카르타고]] 교회가 배교자들을 받아들이고, 신자 수에 비해 도덕성이 떨어지는 문제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교회]]는 [[성령]]의 교회이지, 죄인들의 공동체가 아니었던 것이다. 실례로 교회사학자중에는 터툴리안이 [[신학]]적으로 깊이가 있고 성격이 강한 신학자였다면, 키프리안은 신학적으로 깊지 않은 대신, 온화한 신학자였다고 평가하는 학자도 있다.<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