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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1903년]] 귀국한 뒤로는 대한제국의 [[궁내부]]에서 주사로 관직을 시작했다. [[1905년]]에는 [[관립한성외국어학교]]의 교장, [[1907년]] [[3월]] 학부 편집국장(編輯局長)을 거쳐 [[1907년]] [[5월]]부터는 관립 [[한성사범학교]](漢城師範學校) 교장을 겸임하였다.
 
[[1907년]] [[7월]] [[역대 한성판윤|한성부윤]](漢城府尹)으로 부임했다. [[1907년]](광무 10년) [[7월]] [[대한제국 고종|고종]]이 강제로 퇴위하였을 때는 [[훈3등]] 팔괘장을[[팔괘장]]을 받았고, 한성부윤으로[[한성부윤]]으로 근무할 때인 [[1909년]]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살해하자 이토 추도회를 여러 차례 여는 등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이전부터 적극적인 친일파로 활동했다.
 
=== 일제 강점기 활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