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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임진왜란]] 당시 [[합천]] 군수로 임명되었으나 [[지례 전투]]에서 겁을 먹고 도망가는 적병을 추격하지 않아 벌을 받았다. 그러나 [[1594년]] 경상우수사 [[원균]]이 다대포 사건으로 인해 탄핵당해 [[충청도]]로 내려간 후 경상우수영을 이어 받았다.
 
그 뒤 [[1597년]] [[칠천량 해전]] 당시 전투 중 상황이 불리해지자 전선 12척과 병사 120명을1200여명을 수습하여 후퇴하고 이후 [[이순신]]과 합류하여 [[이순신]]에게 자신이 수습한 전선과 병사들을 내주었다.
 
그러나 [[명량 해전]]이 일어나기 전에 탈영했으며 이에 도원수 [[권율]]은 전국에 수배령을 내려 체포하려 했으나 계속 잡히지 않다가 [[1598년]] [[노량 해전]]을 끝으로 전란이 끝난 뒤에야 [[선산군|선산]] 땅에서 체포되어 참수형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