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한 경제"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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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치세 초기까지 ===
《[[사기 (역사서)|사기]]》 외척세가(外戚世家)에 따르면 경제는 문제의 제5황자로 태어났는데, 형 네 사람이 모두 문제가 대나라 왕으로 있을 때에 일찍 사망하고 [[기원전 179년]] 아버지가 황제에 올라 생모 두씨가 무제의문제의 정실로 승격되면서 문제의 적자(嫡子)가 되었다. [[유교|유학]]을 배우면서도 한편으로 어머니 두씨로부터 [[도교]]를 배웠다. 황태자 시절 오왕(吳王) [[유비 (오왕)|비]](濞)의 세자 현(賢)과 [[바둑]]을 두다가 자신이 지게 되자 한 수 물러달라고 했다가 세자가 거절하자, 홧김에 바둑판을 집어던져 그를 죽여버리고 말았는데, 이 문제로 한의 중앙 정부와 오왕의 관계가 냉랭해졌으나 문제의 정치적 배려로 사태는 겨우 수습되었으며, 훗날 [[오초칠국의 난]]의 한 원인이 되었다.
 
[[기원전 157년]]에 황제로 즉위하였다. 경제의 정치는 기본적으로 아버지 문제의 정치를 이어받아 소극적인 외교정책과 검약에 힘쓴다는 것이었다. 또한 중농 정책을 펼치고 세금을 줄이는 등 사회 안정을 실현시켰다(당시 기록에 따르면 한조의 인구 90%가 농업에 종사하였다). 이러한 경제의 치세를 문제의 치세와 함께 「문경지치」로 칭송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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