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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표범에 대한 기사를 수집하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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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범은 한반도에서도 살았다는 기록이 있고, 한반도에서는 [[호랑이]]보다 많은 수가 서식한 것으로 보이는 동물이다. [[일제강점기]]때, [[일본]]이 유해조수 퇴치의 일환으로 표범을 죽이거나 포획하여 수가 줄어들었고, [[1973년]] 7월 [[대한민국]]의 [[창경궁]](지금의 [[서울대공원]](창경원))에서 [[대한민국]]의 마지막 표범이 죽었다. [[2000년]]대에 이르러 [[강원도]]에서 표범의 발자국 흔적이 발견되면서 한반도에서도 생존한다고 보고되었고, 그 뒤에도 목격담이나 구체적인 증거가 발견되면서 생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거의 절멸단계에 들어섰으며, 지리산을 중심으로 소수의 개체들만 잔존하였던것으로 보여진다. 1960년대초부터 1970년을 마지막으로 지리산을 중심으로 1960년대 초순까지 합천군과 진주시 지역 산속에 표범이 서식하였으며 포획된 기록들이 있다.
현재 [[대한민국|남한]]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을 합쳐서 30여 마리 이상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것은 없다. 현재 한반도에서 호랑이 목격담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중 대부분은 표범일 가능성이 높다. 적응력과 번식력이 [[호랑이]]보다 높은 점으로 보면 아직도 개체군이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
 
1960년 합천군 삼가면과 진주시 미천면 사이 방아재고개에서 토종 표범 한마리가 잡혔다.
당시 이곳에는 호랑이이나 표범이 출몰, 사람까지 해치는 사례가 잦아 경찰이 포수들에게 잡아줄 것을 요청했다고 노 씨는 전했다.
합천에서 진주로 가려면 오도산을 넘어야 했는데 표범 때문에 30여명이 모여야 이동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당시 표범을 잡으려고 차출된 포수는 노종생, 조삼세·천갑열·오병근·조인세 씨 등이었다. 이들은 며칠간 오도산에서 잠복하다가 표범을 잡았다.
 
1962년 경남 합천 오도산에서 어린 수컷이 포획되었고 1963년에 같은 경남 합천 가야산 줄기에서 또다른 인근 주민의 진돗개를 잡아먹은 어린 수컷이 잡혔였다.
두 마리 다 1~2살 정도의 어린 표범들이었고 소백산맥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혈연적인 관계의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1962년 노루 덪에 걸린 오도산 표범은 1962년 당시 64세였던 사냥꾼 황홍갑씨가 생포했다. 죽이면 간단한 일이었지만 그는 표범을 전국민에게 보이고 싶어했고 주민들의 도움으로 생포에 성공했다. 그 와중에 황홍갑씨의 동생은 표범의 발톱에 큰 상처를 입었으며, 어린 표범이었기에 생포가 가능했다고 한다. 황홍갑씨는 소정의 사례금을 받고 표범을 드럼통에 넣어 서울의 창경원에 기증했다.
 
1963년 합천 가야산에서 사살된 새끼 표범은 진돗개 한 마리를 잡아먹은 후 포만감에 빠져 있던 중, 그 주인 황수룡씨 및 주민들과 개에게 쫓기다 잡혀 죽임을 당했다. 이들은 처음 삵을 잡은 줄 알았지만 나중에 귀한 표범을 잡았다는 사실을 알고 시장에 팔았다. 팔린 표범은 한약재상에 팔려 고기와 뼈, 모피가 판매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당시 동아일보의 1963년3월26일 기사화도 되었다.
 
한국에서의 표범은 이미 거의 마지막 잔존 개체가 살아 남은 상태였지만 이를 보호하겠다는 개념 자체가 당시 당국은 물론 일반인에게도 전혀 없었고 단지 횡재를 안겨 줄 수 있는 주인 없는 들짐승에 지나지 않았다.
 
여덟달 뒤인 1963년 11월13일 동아일보는 앞서 어린 표범이 사로 잡혀 창경원으로 옮겨진 합천군 묘산면 산제리 가야마을에서 또 다시 11월10일 김칠리 (당시 51세)씨가 길이 2m, 무게 15관 (56kg에 해당)짜리 암표범을 이번에도 오도산 중턱에서 철사 올가미로 잡았다고 보도되었다. 이 어른 표범은 10시간 넘게 몸부림 치다 죽었다한다. 이 암표범은 창경원으로 보내진 새끼의 어미 표범이었을지도 모른다.
 
이후 1970년 3월6일 경향신문에 표범관련 기사가 실렸다. 경남 함안 여항산 야산에 다큰 18살로 추정되는 길이 160cm의 커다란 수컷 표범이 잡혔다. 다른 기사처럼 이 기사에도 이 표범의 시가가 70만원이라고 친절하게 적어 놓았다. 이 표범이 잡힌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공식적인 발견돠지 않고 있다.
 
1962년 합천 오도산에서 포획된 어린 수컷은 서울대공원 동물원(당시 창경원)으로 옮겨와 1973년 죽음을 맞은 이후[9]로 공식적으로 남한에서의 표범은 멸종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남한 전역에서 대형 맹수의 목격담이 이어지고 발자국 등 여러 흔적이 발견되면서 최소 10마리 이상의 표범이 생존할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북한의 경우 확인할 수는 없지만 개마고원과 백두산 일대에 20마리 이상이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1999년 정도에 백두산 일원에서 존재가 영상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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