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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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삼국사기]]》에는 [[진평왕]]의 장녀장녀로, 《[[삼국유사]]》에는 형제자매 서열에 관한 기록 없이 [[진평왕]]의 딸로딸로만 기록하였다기록되었다.
 
[[진평왕]]이 아들 없이 죽자, [[화백회의]]는 [[진평왕]]의 왕녀인 [[김덕만|덕만]]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고추대하여, 겸하여 '''성조황고(聖祖皇姑)'''라는 존호를 올렸다. 《[[삼국유사]]》 왕력(王曆) 편은 “김씨 성골의 남자가 다하였으므로 여왕이 왕으로 선 것이다(金氏聖骨男盡故女王立王)”라고 밝히고 있다.<ref> {{웹 인용|url=http://db.history.go.kr/url.jsp?ID=NIKH.DB-sy |출판사=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 제목=삼국유사 권 제1 왕력편 |확인일자=2011년 12월 25일}} </ref> 또한 덕만이 즉위하기 1년 전인 건복 48년([[631년]])에 [[칠숙]]과 [[석품]]이 반란을 일으켰지만, 곧 진압되었다.<ref>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bonkiDetail?url=bonkidetail&sn=816 삼국사기 진평왕 53년조] </ref>
 
즉위한 해인 건복 49년([[632년]])에 [[을제]]로 하여금 국정을 총괄케 하고, 각지에 관리를 파견하여 홀아비, 홀어미, 고아, 독거노인 등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돕게 하였으며, 당에 사신을 파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