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민국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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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스카이]]는 자신이 황제가 되기 위해 황제 제도의 부활을 꾀하는 등 정권욕을 채우려다가 실패하였고 [[1917년]]에는 [[장쉰]]이 [[선통제]]의 복위를 꾀했다가 실패하였다.<ref name="개요"/> 그 후 [[돤치루이]],[[오패부]],[[장쭤린]],[[펑위샹]] 등의 군벌이 권력 다툼을 되풀이 하는 가운데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이 틈을 노린 일본은 독일이 소유했던 산둥 반도의 권익을 승계하는 한편 중국에 대하여 [[21개조 요구]] 사항을 승인하도록 강요하였고 군벌 [[돤치루이]]와 결탁함으로써 중국 진출에 성공하였다.<ref name="개요"/> [[1923년]] 이후 세계 열강들은 앞다투어 중국에서의 이권 쟁탈에 주력하였고 이에 불만을 가진 중국의 지식인,학생,노동자들은 외세 배척 운동을 벌였다.<ref name="개요"/> [[1924년]] [[중국 국민당|국민당]] 제1회 전국대표대회가 열러 [[제1차 국공합작]]이 성립되었고 [[1925년]] [[쑨원]]이 죽은 후 국민당은 광둥에 국민정부를 수립하였다. 이어 다음 해엔 [[1926년]] 북벌을 개시하여 [[상하이]], [[난징]]을 점령하였다. 북벌군 사령관 [[장제스]]는 상하이에서 쿠테타를 일으켜 난징 국민정부를 수립하고 국민당 좌파와 공산당이 손을 잡은 무한 정부와 대립하였으나 얼마 후 무한 정부도 공산당과 결별하고 난징 정부와 합류하였다. 그 후 북벌이 재개되고 [[1928년]] 봉천파 군벌 [[장쭤린]]이 일본에 의해 폭살되자 그의 아들 [[장쉐량]]이 장제스와 손잡음으로써 중국 전토가 국민당 수중으로 들어왔다. 이로써 난징을 수도로 하는 [[중국 국민당]] 주도의 '''[[국민정부]]'''({{llang|zh|國民政府}})가 정식으로 수립되었다.<ref name="개요"/>
 
[[국민정부]]는 [[1931년]] [[만주사변]] 이래 [[일본제국|일본]]의 침략에 무저항주의를 택하고 오로지 '[[중국공산당|공산당]] 타도'에 중점을 두는 정책을 폈으나, [[시안 사건]]을 계기로 [[제2차 국공합작]]이 성립되어 항일 민족통일전선이 결성되었다. 그러나 [[1937년]] 7월에 [[중일전쟁]] 발발했고,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국공 간의 반목이 일어나고 [[태평양 전쟁]] 종결과 함께 국공합작은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ref name="개요"/> 국공 양측은 미국 특사의 중재로 정치협상 회의를 열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 하였으나 결국 [[국공 내전]]으로 번졌다. 내전에서 국민당은 패배하고, 공산당은 [[1949년]] 10월 [[마오쩌둥]]을 주석으로 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였다. 한편 [[중화민국 정부]]는 [[장제스]]와 [[중국 국민당]]에 의해 [[타이베이 시]]로 옮겨졌다.<ref name="개요"/>
 
[[국공 내전]] 이후에 [[중화민국]]은 [[중국 대륙]]과 일부 부속 도서의 주권을 ‘상실’하였으나, 이후에도 ‘[[중국]]의 정통 정부’임을 자임하면서 지금까지도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을 인정하지 않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이 차지하고 있는 [[중국 본토]]의 영유권을 주장한다. 한편 당시 대부분의 서방 국가들은 [[중화인민공화국]] 대신 중화민국을 중국을 대표하는 국가로 인정했다. 그러나 [[인도]], [[소비에트 연방]] 등 공산권 혹은 제3세계권 국가와의 관계가 끊어졌으며, [[영국]], [[스웨덴]], [[프랑스]], [[스위스]]를 시작으로 중화민국을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는 서방 국가가 계속 늘어났으며, [[1971년]] [[유엔]]에서 대표 자격이 경질되고 탈퇴하기에 이르자 더 많은 국가가 중화민국의 승인을 취소했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을 정식 국가로 인정했다. [[1979년]] 최대 우방국이었던 [[미국]]도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교를 수립함으로써 이후 세계적으로 [[중국]]의 정통 정부로 승인되지 않는 [[미승인 국가]]와 같은 상황에 빠지게 되어 대외적으로는 정식 국명이 통용될 기회가 크게 제한되었다.([[중화민국#정치|중화민국의 정치]]와 [[중화 타이베이]]를 참고.) [[1992년]]에는 [[아시아]]의 마지막 수교국이던 [[대한민국]]마저도 단교하게 되면서 고립이 심화되었다. [[2010년]] 현재 이 나라를 승인([[중국]]의 정통 정부로서)하는 나라는 겨우 23개국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