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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노부타케'''({{llang|ja|安藤信勇}}, [[1849년]] [[11월 24일]] ~ [[1908년]] [[5월 24일]])는 [[일본]] [[에도 시대]]의 [[다이묘]]이다. [[이와키 다이라 번]]의 7대, 마지막 번주이다. 어릴적 이름은 리사부로({{lang|ja|理三郎}})이다.
 
[[가에이]] 2년(1849년) 음력 10월 10일, [[이와무라타이와무라다 번]]주 [[나이토 마사요시]]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분큐]] 3년([[1863년]]), 이와키 다이라 번의 6대 번주 [[안도 노부타미]]가 요절하자, 어머니가 4대 번주 [[안도 노부요리]]의 딸로 안도 가문과 연이 있다는 이유로, 은거하고 있던 [[안도 노부마사]]에 의해 7대 번주로 영입되어, 그해 10월 2일에 번주 자리에 올랐다. 아직 젊은 나이인 탓에 노부마사가 번의 실권을 쥐고 있었다. 이 때문에 노부마사는 [[보신 전쟁]]이 발발하자 [[사바쿠|좌막]]파로서 신정부에 저항하였으나, 노부타케는 [[게이오]] 4년([[1868년]]) 2월에 상경하여, 5월에는 신정부에 순종할 것을 서약했다. [[메이지]] 원년(1868년) 12월, 노부마사가 신정부에 저항한 죄로 [[리쿠추노쿠니]] [[이와이 군]] 3만 4천 석 영지로 삭감 전봉될 위기에 처하였으나, 노부타케가 필사적으로 신정부를 설득하여 결국 조치는 취소되었다. 메이지 2년([[1869년]])에 [[판적봉환]]으로 [[번지사]]가 되었고, 메이지 4년([[1871년]])에는 [[폐번치현]]으로 면직되었다. 메이지 5년([[1872년]])에 은거하고, 가문을 노부마사의 여덟째 아들 [[안도 노부모리]]에게 물려주었다. 이후 [[가쿠슈인]] 교수가 되었다. 만년에는 이와키 다이라로 돌아가 1908년에 6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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