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릉 (조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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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0년]] 왕비인 [[인경왕후]]가 세상을 떠나고, 재위 46년 [[1720년]] 승하한 숙종과 [[1701년]] 승하한 계비 [[인현왕후]] 민씨의 쌍릉과 [[1757년]] 승하한 제2계비인 [[인원왕후]]의 단릉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현왕후는 [[1689년]] 폐비가 되었다가, [[1694년]] 복위가 되었다. 그러나 7년 후인 [[1701년]]에 승하하였고, 숙종은 능호를 명릉이라 하여 능을 조성할 때 능의 오른쪽을 비워두라고 하여 자신이 묻히기를 소망하였다. [[1720년]] 숙종 46년에 60세의 나이로 승하하자 숙종은 명릉의 오른쪽에 묻히게 되었다. 인원왕후도 사후 숙종의 곁에 묻히고자 명릉에서 400보 떨어진 곳에 능지를 미리 잡아두었지만, [[영조1757년]] 33년 ([[1757년영조]] 33년) 71세로 승하하였을 때, 소나무 숲을 벌채하는 막대한 예산 때문에, 미리 잡아둔 능지보다 훨씬 가까운 쌍릉의 오른쪽 윗 언덕에 잠들게 되었다안장되었다.<ref>{{웹 인용
|url = http://goyang.cha.go.kr/depart/goyang/tombInfoView.action?tombSeq=33&personOder=1&mc=goyang_01_01_01#
|제목 = 19대 숙종(肅宗) 명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