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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부터 관직에 들어섰고 [[임오군란]] 때 [[흥선대원군]]이 치른 [[명성황후]]의 장례에서 종척집사(宗戚執事)를 맡는 등 왕실 주변에서 여러 벼슬을 지냈다.
 
[[1900년]]에 [[경기도]] 관찰사에 임명되면서 요직을 맡기 시작하여, [[1903년]] [[법부대신]]에법부대신에 임명되었으며, 이 무렵 부터무렵부터 [[일본 제국|일제]]와 밀착하여 황실의 동정을 탐지하여 제공하는 등의 역할을 했다.
 
[[을사조약]] 체결 과정에서는 [[궁내부대신]]으로 일제의 뜻에 따라 고종을 협박하는 일을 맡았고, 종친 중 대표적인 친일파로 지목되어 [[나철]]이 [[을사오적]]을 암살하기로 했을 때 암살 대상자로 꼽혔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후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다.
 
[[1919년]] 구 황실을 담당하는 [[이왕직 장관]]에 임명되어 계속해서 일제에 협조하며 활동하였다.
 
== 사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