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궁주 조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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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궁주(義貞宮主)는 공민왕때 판도판서를 지낸 조돈(趙暾)
숙공궁주 김씨가 부친의 뇌물사건으로 퇴출된 직후인 1422년(세종4년) 2월 28일 중전이였던 공비(恭妃,소현왕후심씨)가 가례색(간택)을 통해 조뇌(趙賚), 장수(張脩), 신기(愼幾)의 여식들을 궁에 들여 태상왕의 후궁으로 들이길 청하였는데 태상왕이 " 내가 늙었으니 하고싶지 않다. " 하며 이를 거부한다. 하지만 재차 간택하길 청하여 조뇌(趙賚)의 딸 조씨를 들이기로 결정하지만 곧 몇일 이내 주저하며 맞아들이지 않았다.<ref>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15권, 세종 4년 2월 28일 기사 </ref>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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