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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ation|독일 현대사를 이해하기 위해, 누군가는 반드시, 대개 경시되었던, 1918년 가을 동쪽 상황의 경과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바이마르 공화국|바이마르]] 시대의 한 흐름으로 밝혀진, 전쟁이 끝남을 걱정하는, 넓게 퍼지고 이상하도록 비이성적인 오해들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서부의 적의 우세와, 막대한 수의 미군 유입 이전의 독일 서부전선에서의 단계적 후퇴로 인해 알려졌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것들은 또한, 불가리아의 철수로 인한 발칸 전선 붕괴에 뒤따른 [[동맹국 (제1차 세계 대전)|동맹국]]들의 끔찍한 운명에 대해서도 아니었다. 대신, 그것들은 독일군이 "승자"로서 러시아의 넓고, 전략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중요한 지역을 점령했다는 사실로 인해 판단된 것이다.
1918년 11월 서부의 휴전 당시, 신문의 군대 상황 지도들에는, [[나르바]] 인근의 핀란드 피오르드 전선을 지키는지키며 핀란드에서부터 [[프스코프]]-[[오르샤]]-[[마힐료우]] 및 [[쿠르스크]] 남쪽으로 내려와 [[로스토프]] 인근의 [[돈 강]]까지 가 있는 독일군을 보여주었다. 브레스트-리토프스크에서 확정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분리 인정은, 러시아를 영구적으로 굴종시키려는 독일의 노력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를 나타냈다. 또한, 독일군은 [[크림 반도]]를 점령하고, 그보다 적은 수가, [[남캅카스]]에 주둔하고 있었다. 점령되지 않은 러시아 "잔당"은 — 1918년 8월 28일의 독일-소련 간 부속 조약의 결과로 — 간접적이긴 하나, ''제국''에 단단히 종속될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1920년에 조정된, 소련의 폐허 위에 동방의 독일 제국을 세운다는 히틀러의 장기 목표는 단순히 추상적인 소원에서 발한 비전이 아니었다. 1918년에 세워진 동방의 권역에서, 이 목표는 확실한 출발점을 가졌던 것이다. 동방의 독일 제국은 — 비록 짧은 기간 동안이더라도 — 이미 현실이었다.<ref>Hillgruber, Andreas. ''Germany and the Two World Wars'',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81 pp. 46–47.</ref>}}
 
결국, 9월 계획 문서는 "동방의 레벤스라움"을 독일 역사에 걸쳐 철학적으로 독일 문화권에게 필수적이라고 기록했다; 그리고 레벤스라움은 20세기에 한정되는 [[인종본질주의|인종주의]] 철학이 아니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