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군 (행정 구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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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주석에서는 양국은 옛 [[진나라]]의 탕군이라 하는데,<ref name="h28l"/> 이는 전한의 제후국 양나라가 탕군을 기반으로 세워졌기 때문이다. [[유무 (양효왕)|양 효왕]] 사후 [[전한 문제|문제]]는 양나라를 다섯으로 분할해 양 효왕의 다섯 아들들에게 나눠주었고, 이중 효왕의 태자 [[유매 (양공왕)|공왕]]이 받은 나라가 이후 역사상의 양군·양국이 된다.<ref name="h47">반고: 《한서》 권47 문삼왕전제17{{위키문헌|:zh:漢書/卷047|한서 권47 문삼왕전제17}}</ref>
 
[[유양 (양평왕)|평왕]] 때인 원삭 중에 평왕의 왕후 임왕후의 난행을 문제삼아 양나라에서 8현을 삭감해 10현만 남겨주었다.<ref name="h47"/> 원래 양나라 땅인 극벽(棘壁)이 《수경주》에서 극정에 있다고 하는데, 《속한서》 군국지의 주석에서 극정은 [[패군]]의 차(酇)현 땅으로 나오므로, 《서한정구지리》에서는 차와 그 근방의 초(譙)·망(芒)·경구(敬丘)·건평(建平) 이상 패군 서북의 5현이 이때 양나라에서 삭감한 땅으로 비정했다.<ref name="zh">{{서적 인용 |저자=周振學 |날짜=1987-08 |제목={{lang|zh|西汉政区地理}} |번역제목=서한정구지리 |url= |언어=중국어 |위치=北京 |출판사=人民出版社 |isbn= |확인날짜= }}</ref>
 
아래의 속현 목록은 한서 지리지를 따른 것이다. [[수화 (전한)|수화]] 연간의 현황으로 여겨지며, 일반적으로 첫 현이 군국의 치소로 간주된 양나라의 서울은 수양이므로 특이한 사례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