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민관: 두 판 사이의 차이

1,267 바이트 추가됨 ,  6년 전
편집 요약 없음
(→‎부민관 의거: 목차 이름을 부민관 의거로 정정하고 위키미디어 공용의 사진을 추가. 문장을 다듬음.)
편집 요약 없음
}}
 
'''부민관'''(府民館) 또는 '''경성부민관'''(京城府民館)은 [[일제 강점기]] [[경성부]]에 의해 운영된 부립(府立)의 다목적 홀이다건물이다. 1934년 7월 공사를 시작하여 1935년 12월 10일 완공하였다.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25 (태평로1가) 위치에 세워졌으며, 완공당시 철근 콘크리트 구조 3층, 연면적 5,676m², 높이 45m로 대집회용 건물로써 강당과 사교실등의 편의시설을 갖춘 경성부에서도 손꼽히는 건물이었다. 대강당은 규모는 약 2,000석 으로 [[태평로대소집회, (서울)|태평로]]연극, 1가에강연회등을 치를 수 있었다. 광복이후 국회의사당, 세종문회관 별관을 거쳐 현재는 서울시의회 의사당 및 사무처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ref name="서울특별시의회 출처">{{웹 인용|url=http://www.smc.seoul.kr/main/publish/view.jsp?menuID=001001002003|제목=서울특별시의회 - 시의회 건축물|확인날짜=2016-02-14}}</ref>
 
== 연혁 ==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한 때 [[대한민국 국회의사당|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시민회관과 세종문화회관 별관을 거쳐 현재는 [[서울특별시]]의 [[서울특별시의회|시의회]] 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완공 이후 여러 기관을 거쳐 현재는 서울시의회에서 사용하고있다. <ref name="서울특별시의회 출처"/> 1980년 정문과 현관이 철거되었고,<ref>{{웹 인용|url=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79,00110000,11|제목=문화채청 문화유산정보|확인날짜=2016-02-14}}</ref> 2002년 등록문화재 제11호 '서울 구 국회의사당'
 
 
 
 
{| class="wikitable" border="1"
|-
! 시기 1!!용도
|-
|[[1934년]] ~ [[1950년]]||경성부민관
|-
|[[1950년]]대 중엽 ~[[1974년]]||국회의사당
|-
|[[1975년]] ~ [[1990]]||세종문화회관 별관
|-
|[[1991년]] ~ 현재||서울시의회 의사당 및 사무처
|-
|}
== 역사 ==
부민관터는 본래 [[대한제국 고종|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황귀비 엄씨의 위패를 봉안한 덕안궁이 있던 곳이다. [[경성전기회사]]는 서울의 전기사업을 독점하고 있었는데, 그 대가로 50만원을 납부하였다. 그 돈을 바탕으로 경성부의 부민들을 위하여 5,600여 제곱미터의 규모의 다목적 강당을 지어 문화공연장으로 사용하였다.
 
== 같이 보기 ==
*[[대한민국의_등록문화재_(제1호_~_제100호)#.EC.A0.9C1.ED.98.B8_.7E_.EC.A0.9C100.ED.98.B8|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1호 ~ 제100호]]
* [[경성부]]
* [[부민관 사건]]
 
== 참고 자료 ==

편집

156,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