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벨칼레도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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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서쪽 지역은 약 5만년 전부터 거주가 시작되었다. 그 후 [[오스트로네시안]]이 그 지역에 유입되었다. [[멜라네시아]] 군도에 자리잡은 다양한 무리의 사람들을 라피타(Lapita)라고 한다. 이들은 기원전 1500년경, 현재의 누벨칼로도니와 프로방스드일로요테({{llang|fr|Province des îles Loyauté}})인 이 군도로 들어왔다. 라피타는 태평양의 넓은 지역에 영향을 준 [[항해술]]과 [[농경]]이 발달하였다. 11세기부터 폴리네시아인이 유입되어 멜라네시아 군도의 사람들과 섞였다.
유럽인들은 18세기 후반에 누벨칼레도니와 프로방스드일로요테를 발견하게 되었다. 즉, [[1774년]] 뉴질랜드에 가는 길에 이 곳 그랑드 테르({{llang|fr|Grande Terre}})를 발견한 영국의 항해가 [[제임스 쿡]]선장은 자신의 출생지의 스코틀랜드를 기념하여 뉴칼레도니아(New Caledonia, 칼레도니아는 스코틀랜드의 라틴어식 옛이름이다.)라고 불렀다. 이 항해에서 그는 누벨칼레도니의 북쪽에 있는 섬([[바누아투]])을
백단목 무역이 쇠퇴하자, 새로운 형태의 무역인 노예무역(blackbirding)이 이를 대체하였다. 노예무역은 누벨칼레도니, 프로방스드일로요테, [[바누아투]], [[파푸아뉴기니]], 그리고 [[솔로몬 제도]]의 사람들을 노예로 하여 [[피지]]와 [[퀸즈랜드]]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도록 하였다. 영어 "blackbirding"은 이를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 무역은 20세기 초반에 중지되었다. 이 범죄의 희생자를 "Kanakas"라고 불렸는데 프랑스에 합병된 뒤에는 이 원주민들을 "Kanak"이라고 줄여서 불렀다.
이 섬은 [[1853년]] 말 [[나폴레옹 3세]]에 의하여 프랑스의 영토가 되었다. 이것은 영국이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에 식민지를 건설한 것에 대한 경계의식 때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및 연합군은 동남 아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로 전진해 오는 [[일본]]과 싸우기 위해 누벨칼레도니에 주요 기지를 세웠다. [[누메아]]는 태평양에 있어서 미군 사령부의 역할을 하였다. 남태평양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잇점이 있어 미군의 군함을 누메아에서 신속하게 수리할 수 있었다. 미국 제23보병사단은 아직도 비공식적으로 "Americal"이라고 불리는데 이것은 "America"와 "New Caledonia"을 축약한 것이다. 미군의 사령부로 쓰였던 오각형의 복합건물은 전쟁 후에는 "남태평양위원회"라는 새로운 지역적 국가간 개발기구로 넘어갔다. 이 남태평양위원회는 후에 태평양공동체로 개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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