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동: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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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동이란 동명이 생긴 유래는 정확하지 않으나 [[1936년]]에 만든 《대경성정도》에 의하면 당시 이곳이 대부분 논밭이었는데 ‘황학’이 날아왔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이에 비롯된 듯하며, 또한 현재 신당5동 관내에 옛날 자연부락의 하나인 ‘백학동’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 대비하여 황학동이란 동명이 생기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ref>[http://dong.junggu.seoul.kr/dong01/d01040000.php 황학동의 유래와 연혁], 2012년 6월 26일 확인</ref>
조선 초기 [[한성부]]를 5부 52방으로 나눌때 한성부에 포함되지 않았는데 [[1751년]] [[조선 영조|영조]] 27년에 반포된 《도성 3군문 분계총록》에 의하면 남부 두모방(성외) 신당리계였으며, [[갑오개혁]] 때는 한성부 남서 두모방(성외) 왕십리계 신당동으로, 이듬해 [[5월 26일]]에는 한성부 남부 신당리동이 되었다.<ref>칙령 제98호</ref> [[1936년]] [[4월 1일]]
== 법정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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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서울특별시의 동]]
[[분류:서울 중구의 행정 구역]]
[[분류:1955년 설치]]
[[분류:1966년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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