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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황제인 [[요 태종|태종]] 때에는 주로 중국 경략에 국력을 쏟아부었다. 936년 [[후진 (오대)|후진]](後晉)의 건국을 도와준 대가로 [[연운십육주]](燕雲十六州)를 획득하고 국호를 "요"(遼)라 하였다. 946년 후진을 멸망시켜 [[카이펑|대량]]일대까지 진출하였다. 그러나 요나라의 가혹한 통치는 현지 주민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으며, 결국 중국의 통치에 어려움을 느끼고 철수하였다.
이후
그러나 성종 이후인 [[요 흥종|흥종]](興宗)·[[요 도종|도종]](道宗) 때 황실의 내분으로 반란이 일어났다. 그러한 가운데 요나라는 동만주에서 일어난 여진족 완옌부(完顔部)의 추장 [[아구다]](阿骨打)가 세운 [[금나라]](金)와, 연운 16주를 되찾으려는 송의 협공을 받아 1125년 황제 [[요 천조제|천조제]](天祚帝)가 사로잡힘으로써 멸망당했다. 요나라가 금나라에게 망해가던 이때 요나라 황족이었던 [[야율대석]](耶律大石)은 서쪽으로 망명하여 중앙 아시아 지역에 [[서요]](西遼)를 건국했다. 이후 서요는 칭기즈칸에 의해 멸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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