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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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는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8호로 남강가 의암바위 위에 장엄하게 솟아 있는 영남 제일의 누각이다. [[1241년]] 고려 고종 28년에 부사 김충광에 의해 창건되어 8차례 중건과 보수를 거쳤다. 처음에는 장원루라고 부르다가 조선 초기 기록에 촉석루로 명명되게 된다. 촉석루는 본래 전쟁이 일어나면 유사시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 또는 [[경상우도]] 군사들을 지휘하는 지휘본부로서 사용하였다. 또한 평상시에는 과거 시험 또는 [[향시]]를 치루는 고시장으로도 쓰였다.
 
[[임진왜란]] 중에서는 상시 지휘본부로 사용되었고, [[1593년]] [[7월 29일]] 왜군의 파상적인 공격으로 진주성 동문이 무너지자, [[서예원]], [[김천일]], [[최경회]], [[이종인]] 등은 이곳에 모여서 결사항전 하였으나, 모두 전사하거나 남강에 뛰어들어 자결하였다. 그 후 [[1618년]] [[조선]] [[광해군]] 10년에 병사(兵使) [[남이흥]]이 재건했다. [[1948년]]에 국보로 지정되었으나 [[한국전쟁]] 때에 불탄 것을 1959년에 진주고적보존회가 시민의 성금으로 새로 복원하였다. 촉석루의 뒷쪽으로는 논개의 넋을 기리는 [[의기사]]가 있고 아래로 [[의암]]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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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he Jinju rock of loyalty.jpg|thumb|250px|논개가 왜장을 안고 투신한 의암]]
 
=== 의암 ===
{{참고|의암|논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