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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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하 직후 ===
왕이나 왕비가 죽은 것을 확인하는 초종(初終) 뒤에 내시가 왕이 입던 옷을 가지고, 승하한 곳의 지붕 위로 올라가 북쪽을 향해 ‘상위복’ (왕비의 경우는 '중공복'이라 외침) 이라 세 번 외치는 복(復) 의식을 한다. '상위복'은 '상감은 돌아오소서'의 뜻을 담고 있다. 복을 하고난 직후에 내시가 왕이 입고 있던 옷을 재빨리 지붕 아래로 던지면, 밑에서 대기하고 있던 내시가 얼른 옷을 받아 건물 안으로 들어간 다음 왕의 몸 위에 그 옷을 덮고 5일간 살아나기를 기다렸다. 5일이 지나면 즉시 입관 준비를 시작하였다. 그 뒤 왕이나왕세자 세자가(=사왕: 선왕의 뒤를 잇는 사람) 를 제외하고 대군과 옹주들은 모두 소복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풀어 헤치며, 3일 정도 금식을 한다. 그 뒤 계령(戒令)을 통해 [[장례]]와 왕릉조성에 관한 일을 분담하는데, 이는 [[육조]]에서 담당한다. [[병조]]에서는 여러 곳을 호위하고, [[예조]]는 상례에 관련된 일을 의정부에 보고하고, [[이조]]에서는 빈전도감, 국장도감, 산릉도감이라는 임시기구(도감)를 설치하여 각자 맡은 일을 하게 하였다.<ref>[http://royaltombs.cha.go.kr/portal/funeral/king_funeral_01.jsp?mc=KP_03_01_01 조선왕릉전시관-국장절차]</ref>
 
=== 도감(임시 기구) 설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