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까기 인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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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까기 인형'''({{llang|en|The Nutcracker}}, {{llang|ru|Щелкунчик}})은 [[차이콥스키]] 작곡 작품 71(1892)이며작곡한 [[발레 음악]]이다이자 이에 맞추어 공연되는 [[발레]] 작품이다. 호프만의 동화로 한 모델로, <[[백조의 호수]]>에 이어 널리 상연되었고, 또 모음곡(組曲)으로서 종종 연주되고 있을 정도로 그 음악이 매우 대중적이다. 모음곡으로는 매우 선명한 리듬의 행진곡, 우아한 꽃의 원무곡, 성격무용의 트레팩, 아라비아의 춤, 중국의 춤<ref>중국의 전통 음악 형태인 국악(國樂) 형태가 아니라, 차이콥스키가 상상한 중국풍의 음악을 말한다.</ref>, 풀피리의 춤 등이 포함된다.
 
[[차이코프스키]]는 한창 작곡 중이던 1891년 프랑스 파리에서 악기 제작자 뮤스텔이 만든 '[[첼레스타]]'라는 악기를 발견하였는데 이 악기는 1886년 발명된 악기로써 당시 유럽에 그다지 보급되지 않은 악기였다. [[첼레스타]]의 음색에 매료된 [[차이코프스키]]는 출판업자 유르겐손에게 편지를 보내 이 악기를 1200프랑 상당에 구입해놓을 것과, 다른 작곡가들이 먼저 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신신당부를 하였다고 한다. 차이콥스키는 [[첼레스타]] 뿐만 아니라 효과 악기인 크레셀(래틀), 장난감 북, 장난감 나팔 그리고 1막에서의 마지막 곡인 '눈의 왈츠'에 24명의 여성합창(또는 어린이합창)을 편성에 넣는 등 당시로서는 독특한 시도를 하였다.
차이코프스키는 [[첼레스타]] 뿐만 아니라 효과악기인 크레셀(래틀), 장난감 북, 장난감 나팔 그리고 1막에서의 마지막 곡인 '눈의 왈츠'에 24명의 여성합창(또는 어린이합창)을 편성에 넣는 등 당시로서는 독특한 시도를 하였다.
 
[[차이코프스키]]는 발레초연을발레초 연을 하기 전 1892년 3월 31일에 전곡 중 8곡을 선곡하여 모음곡으로 엮어서 먼저 초연을 하였으며(1892년 3월 31일) 큰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정작 발레초연은발레 초연은 실패를 하였는데 이유인즉슨 엉성한 무대연출과무대 연출과 경험이 부족한 무용수 등 때문이었다. 청중들은발레 음악에는작품으로서는 1892년 찬사를12월 보냈다18일 황실 [[마린스키 극장]]에서 초연되었으며, 지휘는 리카르도 드리고, 안무는 레프 이바노프, 사탕 요정 역은 안토니에타 델루에라, 왕자 역은 파벨 게르트, 호두까기 인형 역은 세르게이 레가트가 맡았다.
 
발레초연은 1892년 12월 18일 황실 [[마린스키 극장]]에서. 지휘에 리카르도 드리고, 안무에 레프 이바노프, 사탕요정에 안토니에타 델루에라, 왕자 역에 파벨 게르트, 호두까기 인형 역에 세르게이 레가트.
 
== 주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