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덕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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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Heodeok 1872.PNG|thumb|고지도에 나타난 회덕현]]
'''회덕군'''은 고려와 조선시대 현재의 [[대전광역시]] [[중구 (대전광역시)|중구]], [[동구 (대전광역시)|동구]], [[대덕구]] 일대를 관할했던 군으로 관아는 현재의 [[대덕구]] [[읍내동]]에 설치되었다. 회덕군은 읍내동을 에워싼 [[원촌동]], [[와동]], [[연축동]], [[법동]], [[송촌동]] 등을 포함하였다.<ref>류용규, [http://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848218 (대전 대발견) 회덕 - 덕 품은 현자의 고장, 수백년 이어온 대전,충청의 정신], [[대전일보]]</ref> 회덕이라는 이름은 [[논어]] 이인편의 '대인회덕 소인회토'(大人懷德 小人懷土·대인은 가슴에 덕을 품고 소인은 가슴에 고향을 품는다)라는 말을 인용해 생긴 것이라고 한다.
 
===회덕 농민봉기==
1862년(철종 13년) 5월 12일 삼남지방의 민란에 영항을 받아 봉기한 농민군은 억울한 일을 호소하기 위해 관아아 몰려가서 현감 [[김낙균]]을 욕보이고, 평소 원한이 있던 부정한 지방관리 이서와 부호의 집을 불태웠다. 청주목으로 진출하여 농민을 괴롭혔던 사람들의 집을 방화하였다. 이 봉기로 전 관찰사는 유배되고, 현감은 관직에서 쫓겨났으며, 주동자들은 사형을 당하거나 효수되었다.
 
== 역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