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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지마트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좌절로 끝나자 제국에는 새로운 개혁이 요구되었다. [[1876년]], 대재상 [[미드하트 파샤]]의 지도 아래 ‘아시아 최초의 성문헌법’인 제국헌법(통칭 미드하트 헌법)을 공포했다. 헌법은 오스만 제국이 서구식의 법치국가이며, 제국 의회 설치와 오스만의 신민으로서 무슬림과 비무슬림은 완전한 평등을 누린다는 것을 선언하였다.
 
하지만 헌법을 발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878년]]에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와의 전쟁에 완패하여 실패로 끝났다. 오스만 정부는 러시아군이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 서쪽의 산 스테파노까지산스테파노까지 진군해도 좋다는 허락을 내린다. 전제체제의 부활을 바랐던 [[압뒬하미트 2세]]는 러시아와 [[산 스테파노산스테파노 조약]]을 맺어 강화하는 한편(이후 산 스테파노산스테파노 조약은 영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독일 등의 유럽 열강이 개입하여 [[베를린 조약 (1878년)|베를린 조약]]으로 대체된다.), 비상사태를 선포하여 미드하트 헌법을 폐지하였다. 이날 이후, 좌파는 국외추방국외 추방 또는 사형을 각오해야 했고, 압뒬하미트 2세는 ‘피의 황제’로 불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재정 파산 이후 제국 경제를 장악한 유럽의 여러 나라에 의한 자본 투하가 진행되어, 유럽의 문화가 빠르게 침투해갔다. 또한 서구의 공업제품과 경합하지 않은 섬유공업 등의 분야에서는 차츰 민족자본이 자라기 시작하고, 전제정치에 저촉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신문이나 잡지의 간행이 확대됨으로써, 훗날의 헌정 부활 이후 민주주의 및 민족주의의 등장을 준비했다.
 
[[1908년]]에 압뒬하미트 2세는 [[청년 투르크 당]]에 의해 폐위되고 [[1918년]] 어느 날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다. 청년 투르크 당은 [[메흐메트 5세]]를 황제로 모시고 마드하트 헌법을 부활하고 개정하였으며, 군비 경쟁에 돌입했다. 그러나 ‘모든 민족의 평등’이 ‘터키인으로 한정한 평등’으로 바뀌고 아랍인들을 비롯한 피지배 민족의 독립 열망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것이 [[제1차 발칸전쟁]]의 원인이다. 이 결과 [[알바니아]]가 터키로부터 독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