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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야노 야스히데'''('''文屋康秀''', 출생 연도 불명 ~ [[885년]])는 [[일본]] [[헤이안 시대]]의 시인이다. 중무성(中務省) 관리 [[훈야노 사네후미]]의 아들이다. 관위(官位)는 정6위상(正六位上).
 
[[간교]](元慶) 원년([[877년]]) 이후 주요 관직을 역임하는관직에 한편나섰고, [[미카와 국|미카와]](三河)의 지방관으로도 나갔었다. 그가 지은 시는 [[고킨와카슈]]》(古今和歌集) 등 각종 시집에 수록되어 [[6가선]]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 생애 ==
훈야 씨는 [[덴무 천황]]의 손자 지누 왕(智努王), 오이치 왕(大市王)이 훈야(文室)라는 가바네를 사성받은 데서 비롯된다.
 
관인으로써는 간교 원년(877년)에 야마시로노다이죠(山城大掾), 3년([[880년]])에 봉전조(縫殿助)에 임관되었다는 것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관직들은 다소 미관말직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고킨와카슈》의 가나(仮名) 서문에는 「글은 능숙하여 그 모양이 몸에 잘 어울리니, 비유하자면 상인이 좋은 옷을 걸친 것과 같다.」라고 평하고 있다. 칙찬(勅撰) 와카집으로는 《고킨와카슈》에 4수, 《고잔와카슈》(後撰和歌集)에 1수가 실렸고, 고킨슈(古今集)에도 두 수가 실렸는데 이는 아들 도모야스(朝康)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육가선의 한 사람인 [[오노노 코마치]](小野小町)와는 친밀한 사이였으며, 미카와 국에 부임했을 때 오노노 코마치를 불렀는데 이에 대해 코마치는 「わびぬれば 身をうき草の 根を絶えて 誘ふ水あらば いなむとぞ思ふ」라는 노래를 지어 대답했다고 전하고 있다. 훗날 《고금저문집》(古今著聞集)이나 《십훈초》(十訓抄) 등의 설화집에 이 노래를 주제로 한 이야기가 실리기도 했다.
 
[[877년]] 이후 주요 관직을 역임하는 한편 [[미카와 국|미카와]]의 지방관으로도 나갔었다. 그가 지은 시는 [[고킨와카슈]] 등 각종 시집에 수록되어 [[6가선]]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 와카 ==
부는 바람에 가을의 초목이 쓰러지니 그래서 산바람은 폭풍이라던가.<br />吹くからに 秋の草木の しをるれば むべ山風を 嵐といふら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