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독립운동"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연합===
[[파일:Houghton STC 13011 - Hayward, Treatise.jpg|thumb|[[존 헤워드]]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두 왕국의 연합에 관한 논문》(''A treatise of union of the two realmes of England and Scotland'') (1604)]]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1603년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국왕이라 선포한 1603년부터선포하면서 같은 군주를 공유하게 되었는데, 이를 [[동군연합]]이라 부른다. 가톨릭-개신교 간 분쟁이 벌어지던 와중 [[제임스 2세 (잉글랜드)|잉글랜드의 제임스 2세]]가 [[명예혁명|1688년에 퇴위]]하고, 프로테스탄트 스튜어트 왕가가 몰락할 조짐 (실제로 1714년에 끝남몰락)을 보인 뒤인보이던 1707년,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가 독자적인 길로 갈 것을 우려하고 두 왕국의 형식적인 연합으로 이어지도록 [[연합 조약]]에 이어서이어 [[1707년 연합법|연합법]]을 통하여통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을 이루었다. [[보니 프린스 찰리]]를 비롯한 제임스 7세와 2세의 후손들이후손들을 이끈필두로 연합을연합에 향한맞선 스코틀랜드의 거센 저항은 1746년까지 계속되었다.
 
그레이트브리튼 왕국과 [[아일랜드 왕국]]을 연합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은 [[1800년 연합법]]을 통해서통해 형성되었다. 아일랜드 남부의 26개 주는 1922년에 연합을 탈퇴했고, 나머지 지역은 오늘날의 [[영국|그레이트브리튼 연합 왕국 및 북아일랜드]]가 되었다.
 
===자치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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