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21 바이트 제거됨 ,  4년 전
Jwseo21(토론)의 15908734판 편집을 되돌림
(Jwseo21(토론)의 15908734판 편집을 되돌림)
 
=== 한산주 이전 ===
한산주가 있던 지역은 유사 이래 [[마한]]의 북쪽지역이었다. 그 이북에는 [[고조선]], [[낙랑군]]이 있었다. 기원전 1세기 후반에 [[온조왕]]이 이끄는 [[부여족(서이족(徐夷族)]] 일파가 [[한강]] 유역으로 남하하자 [[낙랑]]과 [[말갈]]의 침입으로부터 방패막이로 사용하려는 마한의 의도<ref>18년([[기원전 1년]]) 10월, [[말갈]]이 습격을 하여 임금이 병사를 거느리고 칠중하([[임진강]])에서 맞아 싸웠다. 추장 소모(素牟)를 사로잡아 [[마한]]으로 보내고 나머지 적들은 모두 묻어 죽였다.《[[삼국사기]]》 제23권 백제본기 제1.</ref>로 서울 [[송파구]], [[강동구]]를 중심으로 [[백제]]를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백제는 한강 일대를 손안에 넣고 급속히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해 [[마한]] 연맹체를 [[노령산맥]] 남쪽으로 밀어냈다.
 
[[314년]] [[고구려]] [[미천왕]]이 [[낙랑군]]에 이어 [[대방군]]을 병합함으로써, 고구려와 백제는 패수([[예성강]])에서 국경을 접했다. 두 나라는 백제 [[근초고왕]]이 [[371년]] [[평양성]]을 공격해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이후 서로 영토를 뺏고 뺏기면서 항쟁을 벌이다가, [[475년]] 고구려 [[장수왕]]이 한성(漢城, [[하남위례성]])을 점령하고 백제를 현재의 [[경기도]] 지역에서 완전히 밀어내기에 이르렀다. 그 후 백제는 [[551년]] 한성 지역을 잠시 회복했지만 이내 신라가 점령해 신주(新州)를 설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