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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가정제|가정(嘉靖)]] 44년([[1565년]]), 진사로 급제했으며 강주지부(絳州知府), 복건포정사(福建布政使), 부도어사(副都御史), 산동순무(山東巡撫), 주건영위순사(籌建營衛巡司)를 역임하면서 정치를행정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임진왜란]] 당시 병부우시랑(兵部右侍郞)으로 [[만력제|만력(萬歷)]] 20년([[1592년]]) 8월, 경략비왜군무(經略備倭軍務)에 임명되어 [[제독]] [[이여송]](李如松)과 함께 4만 3000명의 [[명나라]] 원군 총사령관으로 참전하였고, 보급 등의 군무를 총괄했다. 이여송이 [[벽제관]]에서 대패한 이후 일본군과의 강화를 모색해가던 과정에서 교전을 자제시킨 한편, 조선 조정을 정치적으로 견제하다 [[만력제|만력(萬歷)]] 21년([[1593년]]) 11월, 소환되었다.
 
이듬해, 평양 수복의 공적이 참작되어 도찰원우도어사(都察院右都御史)로 승진되기도 했지만, 고향 항주로 낙향해 서호(西湖) 근방의 고산(孤山)에서 은거하면서 중앙 정계엔 복귀하지 않은 채 [[만력제|만력(萬歷)]] 34년([[1606년]]) 2월, 향년 71세로 병사했다. 저서 경략복국요편(經略復國要編)은 명나라의 조선 파병에 대한 유관 문서들을 수록한 1급 사료로 임란관계사(壬亂關係史)의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