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중추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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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중 의장은 정무총감이 겸임했다. 따라서 한국인이 차지한 최고의 자리는 부의장이었다. 이러한 구성은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독 이후 개정되어 찬의, 부찬의를 통틀어 참의(參議)로 개칭하였다.
 
조선총독부 중추원은 [[1919년]] [[3월 1일]] [[3.1 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단 한번의 소집명령조차 없었다. 친일파들에게 나눠준 유일한 정치적 관직인 이 중추원의 부의장에는 [[김윤식 (1835년)|김윤식]](훈2등 자작, 이후 3·1운동 가담으로 작위 박탈), 고문에는 [[이완용]](훈1등 백작), [[박제순]](훈1등 자작), [[고영희 (1849년)|고영희]](훈1등 자작), [[조중응]](훈1등 자작), [[이지용]](훈1등 백작), [[권중현]](훈1등 자작), [[이하영]](훈1등 자작), [[이근택]](훈1등 자작), [[송병준]](훈1등 자작), [[임선준]](훈1등 자작), [[이재곤 (1859년)|이재곤]](훈1등 자작), [[이근상 (1874년)|이근상]](훈2등 남작), [[이용직]](자작, 이후 3·1운동 가담으로 작위 박탈), [[조희연]](남작, 사후에 반납)이 임명되었다.<ref>{{서적 인용
|저자=김삼웅
|제목=친일정치 100년사
|날짜=1995-07-01
|출판사=동풍
|출판위치=서울
|id=ISBN 9788986072037
|페이지=80}}</ref>
 
작위가 없는 부의장으로는 [[1942년]] 이후 부의장이 된 [[박중양]]이 있었다.
 
== 주석각주 ==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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