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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가 즉위하면서 [[훈구파]]의 탄압을 이겨 내고, [[사림파]]가 정치 주도 세력이 되었다.
 
[[동인 (정치)|동인]](東人)은 조선 최초의 붕당으로 [[16세기]] 중엽 [[사림파]] 중 신진 세력인 [[김효원(성암)|김효원]], [[유성룡류성룡]], [[이산해]] 등이 연합하여 결성하였다. 주로 이들은 영남 명유인 [[퇴계 이황|이황]], [[남명 조식|조식]]의 문하였으며, 이 밖에도 개성의 처사학자인 [[서경덕]] 문인들도 가담하여, 이들의 연합은 학연의 성격이 짙었다. 동인은 대체로 지방의 청류를 자처하는 한사(寒士)들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일원적인 학맥과 정책을 가진 것이 아니어서 자체 내에 이질적 요소를 많이 지닌 청류의 연합 세력과 비슷했다. 서인의 정책이 주로 치인(治人)에 역점을 두어 제도 개혁을 통한 부국안민(富國安民)에 치중했다면, 동인의 정책은 수기(修己)에 역점을 두어 치자(治者)의 도덕적 자기 절제를 통해 부패를 막으려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동인의 구성원들은 신진 사림의 급진파로 이루어져 있어 [[훈구파]]의 척신 정치의 청산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서인은 대체로 서울 근방에 생활 근거를 둔 고관들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학문적으로는 이이·기대승·김인후(金麟厚)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또 왕비는 대체로 서울 근방의 고관 집에서 채택되는 것이 관례여서 자연히 서인 중에는 척신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심의겸도 명종비(妃)의 동생으로서 외척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체질적으로 사림에 속하고 또 사림도 그를 존경하여 옛날의 척신과는 달랐다. 초기에 기성 사림 중심의 서인은 학문적 구심이 없어 큰 세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동인과 서인 사이의 중재역을 자처하던 [[이이]]가 서인에 합류하고 [[성혼]]도 서인에 합류하면서 두 사람이 서인의 구심을 이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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