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나라 (춘추시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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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의 팽창 ===
천마 · 곡촌 유적지에서 남동쪽으로 20 &nbsp;km 떨어진 횡북촌 유적에서는 붕백(倗伯)이 다스리는 붕읍(倗邑), 천마 · 곡촌 유적지에서 동쪽으로 18 &nbsp;km 떨어진 대하구 유적에서는 패백(覇伯)이 다스리는 패읍(覇邑)의 존재가 드러난다. 그런데 두 유적지 모두 춘추 초기 무렵을 끝으로 멸절되었으며, 이를 통해 춘추시대 초기 진나라의 확장정책에 따라 붕나라와 패나라가 진나라에 병탄된 것을 짐작할 수 있다.<ref name="hd"/>
=== 삼진 분립 ===
문공(文公) 때부터 실정(失政)하기 전까지 계속 천하의 패권을 놓고 초나라와 겨루었다. 또한 임금이 경들을 중용하여 나라를 다스리면서 점차 경들의 세력이 진나라에서 강해졌다.
 
경공(頃公) 때 실정(失政)하면서 진나라 공실은 나라를 다스릴 능력을 잃었고 권력이 경대부에게 넘어가 경대부의 세력이 임금보다 강해졌다.
 
경들의 세력 투쟁 과정에서 조씨(趙氏), 위씨(魏氏), 한씨(韓氏), 지씨(智氏), 범씨(范氏), 중행씨(中行氏)만이 남아 다시 투쟁하였다. 범씨와 중행씨가 반란을 일으키자 조씨, 위씨, 한씨, 지씨가 범씨와 중행씨를 진나라에서 축출하여 제나라로 몰아내고 그 땅을 각각 나눠 차지하였다. 경대부의 영지가 임금의 영지보다 더욱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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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춘추 시대}}
 
[[분류:진나라 (춘추 시대, 晉희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