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좌부 불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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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일체유부 ==
{{본문|설일체유부}}
원래 [[본상좌부]](本上座部: [[설산부]])와 [[설일체유부]]는 입장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본상좌부]]에서는 [[경장|경]]과 [[율장|율]]을 중시한 데 대하여 [[설일체유부|유부]]에서는 [[논장|논]](論)을 중시하였다. [[논장|논]]은 교법에 대한 연구로서의 [[아비달마]]이며, [[설일체유부|유부]]가 전거(典據)로 삼은 것은 [[기원전 2세기]] [[카티야야니푸트라]](Katyayanputra: 迦多衍尼子)가 저술한 《[[발지론]](發智論)》이었다.
 
그 후 6종의 논이 만들어져 합하여 《[[6족발지]](六足發智)》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행하여졌으며, 기원 2세기 [[쿠샨 왕조]]의 [[카니시카]]왕의 보호 아래 연구 성과에 대한 집대성(集大成)이 이루어져서,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 200권의 대저(大著)로 발전하여 [[설일체유부|유부]]의 교의가 완성되었다. 비바사(毘婆沙)란 분석 또는 주석이라는 뜻으로, 《[[발지론]]》을 축어적(逐語的)으로 해석하면서 다른 여러 부파의 교설을 백과전서(百科全書)처럼 인용하고 이를 유부의 입장에서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대비바사론]]》이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이의 강요서(綱要書)가 만들어지고, 특히 4세기에 [[세친]](世親)이 저술한 《[[구사론]](俱舍論)》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중시되었다. [[세친]]은 [[설일체유부|유부]](有部)에서 최후로 분파하여 경전만을 의지(依支)하는 [[경량부]](經量部)에 속하며, 《[[구사론]]》을 통해 [[유부]]의 교리를 비판적으로 해설하였다. 예를 들면, 《[[구사론]]》 〈수면품〉에서 [[세친]]은 [[삼세실유설]]을 [[경량부]]적 입장, 즉 [[과미무체설]]의 입장에서 반박하고 있다.
 
[[설일체유부|유부]]로 대표되는 상좌부불교는 교리적인 연구면에서 크게 진전하여 학문불교적인 색채가 농후했으며, 불교의 가장 정통적(正統的)인 사상을 이어받는 부파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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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승 불교]]
 
== 주석각주 ==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