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 (일제강점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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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조선]] 왕조의 원손으로 본관은 [[전주 이씨|전주]](全州), 휘는 진(晉)이다. 아버지는 당시 이왕세자였던 [[의민황태자|영친왕]] 이은이며, 어머니는 [[일본]]의 왕족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梨本宮守正)의 딸 일본인 [[이방자|의민황태자비 이씨]]이다. [[1921년]] [[8월 18일]]에 [[일본]]에서 탄생하였다. [[조선]]을 방문했다가 귀국을 하루 앞두고 출생한 지 9개월도 채 안 되어 [[1922년]] [[5월 11일]] [[덕수궁]] [[석조전]]에서 의문사하였다. 출생한 지 8개월 만의 갑작스러운 사망이었다.
 
갑작스러운 죽음과 석연치 않은 경과(이진은 죽기 전 [[초콜릿]] 색의 덩어리를 계속 토해냈었다고 한다)때문에 독살설이 강하게 제기되었으며, 한국에서는 일본인들이 조선 이씨왕가의 대를 끊기 위해 저지른 것이라는 견해만이 주장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굳이 진을 죽일 필요성이 없었고 오히려 조선에서 일본인 피가 섞인 왕자를 증오하여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라는 견해도 있으며, 이 견해 역시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아니면 당시 이진을 진찰했던 의사의 견해처럼 소화불량이 원인일 가능성도 있다. 고종의 독살설은 여러가지의 자료들이 발견되면서 거의 확정되었지만 이진의 경우 일본에서 독살했을 가능성 뿐만 아니라, 조선에서 독살했을 가능성과 힘겨운 여행(당시 교통상황은 그다지 좋지 못했고, 이진은 생후 8개월이었다)과 소화불량 때문일 가능성 또한 충분히 있으므로, 명확한 증거가 제기되지 않는 이상 이 세 가지의 경우를 모두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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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민태자 가계도}}
 
* 외할아버지 : 친왕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나시모토 모리마사]]([[1874년]] - [[1951년]])
* 외할머니 : [[나시모토노미야 이쓰코]]([[1882년]] - [[1976년]])
** 외숙부 : 친왕 나시모토 노리히코<ref>원래는 나시모토 모리마사의 조카이자 이방자의 사촌으로, 삼촌 모리마사의 양자가 되었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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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명이인인 [[은신군]] [[은신군|이진]]은 족보상 왕자 이진의 5대조에 해당된다. 또한 [[이진 (1919년)|이진]]은 그의 사촌 누이 [[이해원 (1919년)|이해원]]<ref>의친왕의 딸</ref>의 본명이기도 하다.
 
== 주석각주 ==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