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노예전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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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기원전 73년]] - [[기원전 71년]]
|장소=[[이탈리아]]
|결과=로마 공화정의 승리
|교전국1=<center>[[파일:Spqrstone.jpg|80px]]<br />[[로마 공화정]]</center>
|교전국2=<br />도망노예 및 검투사
 
=== 전쟁의 양상 ===
[[기원전 72년]] 봄, 노예군은 숙영지에서 나와 북쪽 [[갈리아]]로 향했다. 원로원은 법무관의 군단이 패했고 반란군의 규모가 커지자 그 해의 집정관 푸블리콜라와 클로디아누스를 모두 토벌에 투입했다. 처음에 푸블리콜라의 로마군은 크릭수스가 이끄는 노예군 3,000명을 [[가르가노 산]]에서 만나 2/3를 죽였고 크릭수스도 이 전투에서 죽었다. 스파르타쿠스는 로마군의 추적을 따돌리면서 아드리아 해를 따라 북상했다.
 
이 대목에서 [[아피아누스]]와 [[플루타르코스]]의 기록이 약간 달라지므로 스파르타쿠스의 행로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스파르타쿠스는 집정관의 군대를 모두 격파하거나 따돌리고, 로마군에 엄청난 손실을 가했다. 피세놈 근처에서 전투가 벌어졌고 노예군이 집정관의 군대를 다시 한번 격파한 후 북쪽으로 계속 향한 것은 사실인 듯하다. 플루타르코스는 갈리아 총독 카시우스가 내려와 스파르타쿠스를 저지하려 했으나 역시 패배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스파르타쿠스가 북쪽으로 가지 않고 남쪽으로 다시 방향을 돌렸다. 아피아누스는 스파르타쿠스가 로마로 진격하기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플루타르코스는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충분히 알프스를 넘어 갈리아로 도망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스파르타쿠스가 방향을 남쪽으로 돌린 이유는 알 수 없다.
* [[스파르타쿠스단]]
 
== 주석각주 ==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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