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사택지적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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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택지적비'''(砂宅智積碑)는 [[백제]] [[의자왕]] 때 사택지적(砂宅智積)이 세운 비석이다. 현재 [[국립부여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1983년]] [[9월 29일]] [[충청남도의 유형문화재]] 제101호로 지정되었다가, [[2014년]] [[12월 3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845호로 승격되었다.<ref name="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문화재청고시제2014-142호,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 문화재청장, 대한민국 고나보 제18420호, 775면, 2014-12-31</ref>
 
== 개요 ==
현존하는 백제의 유일한 비석이며, 높이 102[[센티미터]], 너비 38센티미터, 두께 29센티미터인 비에 56자가 남아 있다. [[1948년]] [[부여읍]] 관북리 도로변에서 발견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부여에 [[신궁 (신토)|신궁]](神宮)을 만들면서 그 도로에 깔려고 부여 읍내에서 초석이나 지대석 등을 가져와 모아두었는데, 광복 후 그 석재 속에서 학자들이 발견했다. 문체는 사륙변려체이고, 글씨체는 구양순체이다.
 
비문의 내용은 인생의 덧없음을 서글퍼하며, 불교에 귀의하여 금으로 법당, 옥으로 탑을 세웠다는 것이다.
 
== 보물 승격사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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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택지적비는 백제 후기 귀족들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고 백제 관등을 이해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또 격조높은 문체와 서법은 백제의 수준높은 문화를 잘 보여준다.<ref name="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 />
 
== 주석각주 ==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