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창 (1885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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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창'''(梁在昶, <small>일본식 이름:</small> 梁川在昶, [[1885년]] [[9월 29일]] ~ [[1968년]] [[1월 14일]])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 출신 기업인이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도 지냈다. 본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소격동이다.
 
== 생애 ==
[[한성부]]에서 경성학당을 졸업하고 [[1905년]]에 [[농상공부]] 기사로 임명되는 등 대한제국 말기에 기술직 관리로 근무했다. [[1910년]]에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면서 [[조선총독부]] 소속으로 편입되고 [[한국병합기념장]]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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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실업계에 들어가 [[조선생명보험회사]] 취체역, 선만토지브로커 사장, 경성상공회의소 의원, 부평수리조합 부조합장 등을 역임했다. 경성부회 의원으로도 두 차례 당선되는 등 경성 지역 유지로 활동하였다.<ref>{{저널 인용
|제목=京城府議 當選 人物記
|저널=삼천리
|연도=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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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제7호}}</ref>
 
[[1920년대]]부터 [[조선불교단]], [[동민회]], [[구일회]] 등 유력한 인물들로 구성된 단체에 꾸준히 참여했으며, [[태평양 전쟁]] 시기에는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도 맡았다.<ref>{{서적 인용
|저자=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제목=일제협력단체사전 - 국내 중앙편
|날짜=2004-12-27
|출판사=민족문제연구소
|출판위치=서울
|id=ISBN 8995330724
|페이지=237,335,390,570쪽}}</ref>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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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사편찬위원회 인물|108_00349|양재창|梁在昶}}
 
== 주석각주 ==
<references/>